[사설]外高논란, 교육 포퓰리즘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19일 03시 00분


외국어고등학교(외고)의 위상 문제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은 외고를 자율형사립고로 전환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외고는 사실상 폐지된다. 외고 입시가 사교육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 폐지론의 주된 이유다. 폐지론자들은 국내 사교육비의 상당 부분이 외고 입시 경쟁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외고를 없애면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이 크게 줄고 민생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외고 측은 반발하고 있다. 외고를 사교육의 주범으로 모는 것은 ‘마녀 사냥’식 접근이라는 것이다. 설령 외고를 없애더라도 또 다른 명문고에 진학하기 위한 사교육 수요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반박이다. 평등교육을 강조하며 ‘외고 때리기’에 앞장섰던 노무현 정권도 외고 입시와 운영방식을 개선하는 쪽으로 정책을 추진했지, 외고의 뿌리를 잘라버리는 과격한 발상은 하지 않았다는 항변이다.

이번 논쟁은 한국 교육에서 ‘사교육비 경감’과 ‘수월성 교육’이라는 목표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의 문제를 다시 부각시킨다. 외고가 사교육비를 증가시킨 측면을 부정하기 어렵다. 외고에서 배우면 이른바 명문대에 진학할 가능성이 훨씬 높기 때문에 외고 진학을 위한 사교육 시장이 계속 확대돼 왔다.

하지만 오랜 평준화 체제 속에서 외고가 수월성 교육에 대한 수요에 어느 정도 부응해온 것도 사실이다. 외고를 폐지해도 자립형사립고와 과학고 국제고 등 다른 명문고 입시에 수험생들이 몰려 중학생의 사교육 수요는 크게 줄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외고 폐지로 일시적인 사교육비 절감 효과가 생긴다고 해도 국내 사교육 수요는 명문대 진학과 직결돼 있기 때문에 대학입시 단계로 옮겨갈 공산이 크다. 한쪽을 억누르면 다른 쪽으로 수요가 이동하는 ‘풍선 효과’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정치권이 앞장서고 있는 외고 폐지론은 사교육비 절감에 초점을 맞추었을 뿐, 교육의 전체상을 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외고 출신들이 법관 등 인기 직종에 많이 진출하고 있는 데 대한 견제심리도 작용하는 듯하다. 외고는 정책으로 없앨 수 있지만 수월성 교육에 대한 수요는 차단이 불가능하다. 외국어에 능통한 인재 양성이라는 국가적 과제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조만간 공식적인 정책 방향을 내놓는다고 하는데, 장기적 청사진 아래서 신중한 결정을 해야 한다. 교육정책 포퓰리즘은 국가 백년대계에 역행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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