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혁]해운대 戀歌

  • 입력 2009년 8월 31일 02시 57분


영화 ‘해운대’ 이야기가 아니다. 휴가 기간 고향 부산에서 어머니, 동생과 함께 그 영화를 봤지만 내 눈에는 그저 그렇고 그랬다. 제작비 부족 때문인지, 아니면 영화기술의 한계 때문인지 지진해일 파도를 애니메이션처럼 어설프게 처리한 건 좀 씁쓸했고….

정확하게 말하면 해운대와 광안리 사이의 바다로 흘러드는 수영강 이야기다. 그 강변에서 발견한 ‘스토리’에 관한 이야기다.

재작년인가, 아내와 함께 세계 최대라는 신세계백화점 부근의 수영강변 산책로를 걷다가 깜짝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밤이라 강은 고즈넉한 정적 속에 잠겨 있었다. 걸음을 멈추고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숭어의 몸짓을 눈에 담고 있는데 갑자기 발밑에서 ‘찰싹∼’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려다보니 강물이 ‘범람(?)’해 운동화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잠시 넋을 잃었다. 아내는 내 표정을 보고 ‘누가 이따위로 산책로 공사를 했어’라며 분노를 터뜨리는 걸로 생각했다 한다.

그게 아니었다. 바다와 맞닿아 있어 그 물은 말이 강물이지 사실 바닷물이나 마찬가지다. 수영강 하구는 낚시로 바닷물고기인 감성돔과 농어를 잡는 곳이다. ‘누가 바닷물이 고급 아파트촌의 강변산책로를 살짝 넘치게 만들었을까. 누가 이런 감동을 만들어냈을까.’ 나는 그런 생각에 잠시 넋을 잃고 있었다. 세계 어느 도시에도 그런 수변산책로는 없을 것이다.

평소에도 수면과 산책로가 거의 같은 높이로 펼쳐져 있어 달이라도 밝으면 강물이 빈 가슴을 가득 채워주는 곳이었다. 거기에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범람, 아니 친수(親水)스토리를 끼워 넣은 것이다. 강물인지 바닷물인지 모를 그 물이 ‘난, 그저 바라만 보는 관광자원이고 싶지 않아요’라고 속삭이며 발밑을 적시는 것 같은 이야기…. 바다에 대한 이해, 사람에 대한 배려가 조용히 밀려왔다.

“혹시 만조(滿潮) 때의 수위를 잘못 계산한 건 아니겠지?” 아내에게 이런 말도 했지만 그렇게 믿고 싶지 않았다. 정확한 경위를 취재해볼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냥 부산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도시감각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부산에는 ‘해운대 특별구’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국내 최고 관광휴양지인 동시에 부산 최고급 주거지인 해운대의 정체성이 투영된 단어라고 한다. 특히 해운대의 부동산 붐을 겨냥한 말로, 부산시내 다른 구민들의 질투 반(半) 시샘 반도 묻어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해운대가 정말 특별한 도시가 되길 빈다. 세계 최대 백화점이나 그 백화점 옆에 돛단배 이미지로 짓는다는 108층짜리 빌딩, 1000만 관객을 넘은 대박 영화의 무대와 부산국제영화제(PIFF)의 주 상영관(두레라움)으로만 유명한 해운대가 아니라 수영강변 산책로의 ‘범람’ 같은 사람과 바다의 이야기가 곳곳에서 살아 숨쉬는 그런 특별한 도시가 되길 빈다.

더 바란다면 해운대의 특별한 이야기가 영화처럼 번져 2012년 여수엑스포가 반도(半島)국가 정체성의 반쪽, 해양을 되찾는 ‘88서울올림픽’이 되길 빈다. 기 소르망은 최근 본보 칼럼(25일자 A31면 참조)에서 한국민의 무관심과 계획의 모호함 때문에 여수엑스포가 그렇게 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해운대를 특별한 도시로 만들 수 있다면 기 소르망식(式) 비관론도 수장(水葬)시킬 수 있을 것이다.

김창혁 교육복지부장 cha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