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정안]소비자를 속이는 기업에게 미래는 없다

  • 입력 2009년 8월 22일 02시 58분


최근 소비자의 힘이 부쩍 커지고 있다. 똑똑한 소비자인 ‘스마트슈머(Smart-sumer)’, 제품 개발이나 검증 과정에도 관여하는 창조적 소비자를 의미하는 ‘크리슈머(Crea-sumer)’ 등 신(新)소비계층을 이르는 신조어들도 쏟아지고 있다.

며칠 전 만난 한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2년 전 단종됐던 제품을 최근 다시 생산하기로 했다”며 “이미 판매 중인 신상품과의 경쟁 문제 등을 고려해야 했지만 소비자들의 재생산 요구를 더는 무시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일부에선 ‘소비권력’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소비자들의 이 같은 영향력은 실물경제를 넘어 금융시장 등 경제 전반에 퍼지고 있다. 황승진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과거 경기 흐름을 판단하는 데 주변 변수 정도로만 여겨지던 소비 심리가 이제는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연일 들려오는 국내 유통·서비스업계의 소식은 우리나라 업체들이 이 같은 ‘흐름’을 제대로 읽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게 한다. 21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이뤄진 소주업체들의 가격 인상은 담합행위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 온라인 음악사이트를 운영하는 대형 음반유통사와 직배사들이 지난해 8월을 전후해 소비자의 음원 이용가격을 담합했다는 시민단체의 고발에 대해서도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액화석유가스(LPG) 업체와 영화관 사업자, 이동통신사들 또한 가격을 부당하게 책정했거나 담합했는지에 대해 조사를 받고 있다. 사실이라면 이들 제품과 서비스 가격이 오른 탓에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던 소비자들은 심한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뿐만 아니다. 서울시 특별사법경찰(특사경)은 5월부터 서울시내 출장조리업소(출장뷔페) 47곳에 대한 위생실태 조사를 벌인 결과 원산지를 허위로 표기해 팔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사용한 16곳을 적발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소비자를 기만하는 이런 사례들은 소비권력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도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다.

불황 속에서 한 푼이 아쉬운 사업주는 단기간 이익을 올리기 위해 여러 유혹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소비자에 대한 두려움과 스스로에 대한 양심으로 그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그 기업의 미래는 없다. 날로 커지는 소비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기업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이다. 미국의 거대기업 GM은 내부 혁신을 못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소비자의 요구를 외면하다 넘어졌다고 볼 수 있다.

김정안 산업부 j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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