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페]공기업 새내기는 신이 버린 자식?

  • 입력 2009년 8월 20일 03시 03분


“기존직원 고통분담 물건너가”
애꿎은 신입사원만 초임 삭감

정부는 지난해 8월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을 발표한 뒤 선진화를 위한 8대 과제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1년이 지난 지금 과제별 성적표는 제각각입니다. 민영화나 통폐합 같은 과제는 진도가 더디지만 신입사원의 초임(初賃) 인하와 정원 감축은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초임 인하는 262개 대상 공기업 중 6월 말 기준으로 223개사가 완료했을 정도로 실적이 좋습니다. 30%나 초임을 깎은 공기업도 있습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마냥 감탄할 수만은 없을 것 같습니다. 기존 직원의 임금은 그대로 놔둔 채 신입사원에게만 고통분담을 강요했기 때문입니다. 예금보험공사는 올해 초부터 기존 직원에 대한 임금 삭감을 검토하다가 보류했습니다. 한국석유공사도 4급 이하 일반 직원들에 대해 1% 이내의 임금 반납을 추진하려다 노조의 반대로 중단했습니다. 한국전력공사와 한국수자원공사 등은 기존 직원의 임금 삭감을 노사간 협의 안건으로 꺼내지도 못했습니다.

노조 측은 임금 삭감을 제안해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발전 공기업의 한 노조 간부는 “신입사원 임금만 줄인다고 해서 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존 직원들의 임금을 깎는다고 하면 노조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정부가 이 문제를 초임 삭감처럼 공공기관 선진화의 과제로 밀어붙일 수는 없을까요. 기획재정부 당국자는 “초임 인하는 경제위기 상황에 더 많은 사원을 뽑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추진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기존 직원의 임금 삭감은 노사 합의 사항이고 정부가 강제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애꿎은 신입사원만 월급이 깎이는 실정입니다.

이런 영향이 반영돼 요즘 대학생들의 공기업 선호도가 예전만 같지 않다고 합니다. 반면 기존 직원들은 안정적인 울타리 속에서 ‘신도 부러워하는 직장’ 지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런 불합리성을 없애기 위해 재정부는 근무 연수가 길수록 기존 임금을 줄이는 ‘임금 피크제’ 표준모델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모델이 공기업 임금구조도 선진화시키길 기대합니다.

박형준 경제부 기자 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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