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우경임]마스크도 안쓰는 한국… 신종플루 불감증

  • 입력 2009년 8월 18일 02시 55분


최근 가족을 마중하러 인천국제공항에 갔을 때 얼굴을 반쯤 가리는 커다란 마스크를 쓴 관광객들이 눈에 띄었다. 대부분 일본인이었다. 부랴부랴 약국을 찾아 마스크를 사서 썼는데 숨쉬기도 말하기도 여간 답답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불편함을 감내하면서도 마스크를 벗지 않는 일본인의 철저함이 인상 깊었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는 신종 인플루엔자A(H1N1) 감염자가 전 세계 인구의 30%인 20억 명에 달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적으로 치사율이 1%인 것을 감안하면 사망자는 2000만 명에 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 주말 국내에서 신종 인플루엔자 환자 2명이 숨졌지만 한국은 여전히 신종 인플루엔자를 독감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길거리에서 콜록콜록 기침을 하면서도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은 거의 없다. 기침을 할 때 고개를 돌리거나 입을 막고 하는 경우도 드물다. 기본적인 ‘기침 에티켓’조차 지키지 않고 있다. 해외여행이나 어학연수를 다녀온 입국자들이 검역에 걸리지 않으려고 해열제를 복용하는 일도 흔하다. 휴가철을 맞아 필리핀 여행을 다녀온 김영란 (가명·29)씨는 “여행에 동행한 여행객 대부분은 검역에 잘못 걸리면 번거롭다며 귀국 전 해열제를 복용했다”고 말했다.

증상이 나타나면 즉각 보건소나 의료기관을 찾아야 하지만 이도 잘 지키지 않고 있다. 신종 인플루엔자 진단이 나오기까지 자택에 격리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망자 2명 중 1명은 증상이 나타난 후 6일이 지나서야 의료기관을 찾았다. 의료기관도 뒤늦게 신종 인플루엔자 감염 가능성을 의심했고 결국 신종 인플루엔자 치료제인 타미플루 투약 시기를 놓쳤다. 개인과 의료기관이 조금만 경각심을 가졌더라면 사망에까지 이르지 않을 수도 있었다.

사실 ‘신종 인플루엔자 불감증’에는 정부도 한몫했다는 지적이 있다. 불안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전염병 위기 경보 단계를 격상시키는 것을 미루는 등 국민을 안심시키는 데만 주력했기 때문이다.

근거도 없이 신종 인플루엔자에 대한 공포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신종 인플루엔자 불감증을 신종 인플루엔자보다 더 두려워해야 한다”고 말한다. 불감증은 신종 인플루엔자 예방을 위한 위생수칙을 무시하게 만든다. 위생수칙을 지키는 것은 자신은 물론 타인도 보호하는 ‘전염병 예절’이다. 신종 인플루엔자의 가을철 대유행이 예고되는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경각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우경임 교육복지부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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