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원재훈]아버지를 업고, 딸을 업고, 시를 업었다

  • 입력 2009년 8월 15일 02시 56분


처음으로 늙은 아버지를 업었다. 아버지를 업고 연립주택 4층 계단을 오르자 온몸에 땀이 축축하다. 팔순을 훨씬 넘기신 아버지는 어이구, 어이구, 얘야, 잠시만, 잠시만 하신다. 늙으시니 업혀 가는 일도 힘들다. 겨우 방에 모셔다 드리고 늦은 저녁을 먹고 아버지 집을 나오는데 문득 이제는 시를 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땀방울처럼 이마에서 흘러내렸다.

그래, 이제는 시를 못 쓸 것 같다. 그날, 내 등에 업힌 아버지의 촉감, 막대기처럼 딱딱한 두 다리, 앙상한 팔, 겨우 겨우 하는 쉰 목소리는 나에게 시를 쓰라고 한다. 청춘 시절에는 아름다운 여인을 기다리다가 은행나무 아래서 시를 쓰고 나이가 좀 들어서는 한겨울 임진강가에서 얼음 같은 강물로 세수를 하면서 그 자리에서 곱은 손을 호호 불어가면서 삶과 용서에 대한 시를 썼다.

그 시절 같았으면 아버지 업고 계단을 올라가는 시를 썼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대신 아버지 병원비, 혹시 잘못되시면 치러야 할 장례 절차, 매달 드리는 용돈 몇 푼을 이번 달에 못 드렸다는 자책감, 원고료가 입금되지 않아 짜증나는 일, 그런 ‘문학적인’ 사념만 가득했다. 몇 년 전만 해도 건강하신 아버지가 자장면을 곱빼기로 드셨는데 이제는 반 그릇도 못 드신다는 생각이 들어 울적했다.

시집과 인문학 서적의 판매 실적이 저조하다는 신문 기사를 보았다. 사실 내게는 별반 흥미롭지 않은 내용이었다. 비록 지금은 시를 쓰지 못하지만 그래도 한때 꿈속에서도 시를 적곤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시집이 많이 나간다는 건 시인으로서 모욕적인 일이라고 자위하곤 했다. 시가 대중적으로 많이 읽히는 건 어찌 보면 비정상적인 일이라고 나는 본다.

좋은 시집은 늙고 다시 태어나

시는 클래식 음악처럼 소수 독자가 아껴서 빨아먹는 가난한 시절 막대사탕 같다. 그래서 한때 황지우 시인이 자신의 시집 중에 어느 하나가 어쩌다가 제목 때문에 잘 나가자 주점에 앉아 술을 마시면서 당신의 시가 나빠지지 않았는가를 반성하면서 마음 아파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뻤다. 그래, 시인이라면 그런 거야, 그릇이 큰 시인이다 싶었다. 이것이 잘 팔리지 않는 책에 대한 위악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지난 시절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니 어떤 시집이 그해 일등을 하곤 했다. 생각하니 시집이 대중소설보다 더 잘 나가고, 유명 시인이 탄생해도 그들을 부러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시집은 천천히 오래 조금씩 나가는 귀한 물건이다.

노학자의 서재에, 소년 소녀의 가방에, 주부의 시장바구니에, 직장인의 가방에 시집이 머무는 일은 사회가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건강하다는 이야기다. 모임에서 누가 더 시를 많이 외우나 자랑하고, 백석이나 소월 동주와 같은 낭만적인 이름을 노트에 적어 놓은 학생이 우리 사회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 우리말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방법 중에 하나가 바로 시 읽기이다. 우리말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모든 게 끝장이다. 시인은 한국어라는 원석을 보석으로 다듬는 장인들이다. 금강석보다 빛나고 강한 문장과 단어는 우리의 국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도 시집도 생명이기에 늙는다. 출판되었기에 때에 따라 판매지수가 달라지기도 한다. 우리 아버지처럼 못난 아들의 등에 업혀 어이구, 어이구 할 때도 있다. 그러다가 운명하기도 한다. 그럼 우린 곡소리를 내면서 운다. 그리고 뒤를 돌아본다. 그 자리에 눈부시게 건강하고 예쁜 아이들이 있다.

공교롭게 중 3인 딸아이가 아버지 집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잠이 들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라 깨워도 비몽사몽이다. 업어 줄까 하니까, 평소에는 뺨에 손만 대도 난리를 치던 아이가 선뜻 아빠 등에 업힌다. 더운데 따듯하다. 향기롭고 평화롭다. 사랑스럽고 건강하다. 아이를 업었다. 이제 처녀 같은 딸은 연로하시고 병든 아버지보다 묵직했지만 훨씬 가벼웠다. 문득 더운 연립주택 계단을 올라가는데 눈물이 났다. 나도 모르게 “에이 씨”라고 내뱉었다.

부채 바람같은 시 한편 맛 보길

아버지 업었던 자리에 딸이 업힌다. 우리 시집과 인문학도 그럴 것이다. 시인에게 많이 팔리는 건 남 이야기다. 중요한 건 시집의 완성도이다. 좋은 시집, 좋은 인문학 서적은 좋은 독자의 손에 반드시 선택된다. 좋은 시집은 늙고 병들고 다시 태어난다.

정현종 선생은 말했다. “예술작품에 순위를 매길 수 없다는 것, 투표해서 많은 표를 얻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 소수 독자만 있어도 좋은 시는 좋다는 것이다. 예술가가 유명해진다는 것은 일종의 장애이다. 과일 속 벌레 같은 거지.”

시는 그해 베스트셀러 같은 에어컨 바람이 아니라, 더운 여름날 부채가 만드는, 있는 듯 없는 듯한 그런 바람이다. 독자여, 시를 업어라.

원재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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