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노동 전쟁으론 일자리 지킬 수 없다

  • 입력 2009년 8월 9일 19시 56분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이 화약고 같은 도장공장을 점거한 77일 동안 현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농성이 끝나자 본관 앞에는 사격용으로 쓰인 볼트와 너트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노조 간부 3명은 70m 높이의 굴뚝에 올라가 “이 싸움에서 승리하지 않으면 내려가지 않겠다”며 고공(高空) 농성을 벌였다. 노조원들은 농성장 안에서 제식 훈련과 사제총 사격 연습을 하며 ‘전투 물품’ ‘실전 연습’ 같은 군대식 용어를 썼다. 농성 노조원들이 던진 화염병에 맞아 전경의 방호복에 불이 붙고, 자동차와 타이어를 불태우는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다. 그야말로 ‘노동 전쟁’이 벌어지는 나라가 세계 11위 무역대국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또 다른 ‘한강의 기적’이다.

쌍용차 노조 홈페이지에는 중국 상하이차가 6000억 원을 투자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기반 기술을 빼내고 ‘먹튀’했다는 애국적 비난이 넘쳐났다. 자동차 업계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쌍용차가 가진 SUV 설계도 정도는 몇백억 원이면 살 수 있다”고 반론을 폈다. 그는 “상하이차로서는 국제적 망신을 사는 일이어서 쌍용차 철수를 무척 망설였다. 쌍용차의 지속가능성과 추가 투자를 저울질하며 마지막까지 고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총고용을 주장하는 강성노조를 끌어안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투자를 계속할 수 없다는 경영적 판단을 최종적으로 내렸다는 것이다. 노조의 ‘먹튀’ 논리에도 경청할 대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 공산당이 쌍용차 노조의 “함께 살자” 투쟁에 손들고 떠난 것은 분명하다.

중국 공산당이 손든 쌍용차 노조

기업의 생사가 걸린 경쟁이 벌어지는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강한 노조는 강한 기업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GM뿐 아니라 포드, 다임러크라이슬러 같은 미국차 회사도 강력한 노조가 쟁취한 높은 임금과 건강보험 연금혜택 등 고비용 구조로 허덕이고 있다. 외국 경쟁사들은 노조가 없는 미국 캐나다 공장에서 생산 대수를 늘리며 미국시장을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 101년 기업 GM은 파산한 뒤 뉴GM으로 새 출발하면서 올해 말까지 2만 명을 추가 감원할 계획이다.

자동차 회사들이 21세기 친(親)환경에너지 기술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세계 시장에서 5, 6위 안에 들지 못할 경우 살아남기 어렵다는 전망도 있다. 7위인 현대·기아차도 분발해야 할 판이다. 쌍용차를 살리려면 수조 원을 투자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쌍용차 노사가 화합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하고 협력업체들이 지역 주민과 힘을 합쳤더라도 생존을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쌍용차 노조는 정반대의 길을 갔다.

대기업 노조는 사회적 약자가 아니고 철옹성 같은 기득권 세력이다. 쌍용차의 인력이 회사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방만해진 데는 노동조합의 책임이 크다. 평택 기업인들은 쌍용차 노조 간부들의 모럴 해저드에 관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했다. 최병훈 쌍용차 협력업체 채권단 대표는 방송 인터뷰에서 “빚 얻어 공장을 돌리는데 6개월째 매출이 없어 마당에 잡초만 무성하고 설비는 녹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부품업체 공장장 월급이 자동차 회사 생산직의 평균 월급에도 미치지 못한다. 민노총 금속노조가 벌이는 강성투쟁의 최대 피해자는 중소기업 근로자들이다.

쌍용차 농성현장에서는 반자본주의적이고 사회주의 또는 친북 성향의 유인물과 책자가 다수 압류됐다. 쌍용차 농성 현장 주변에서 붙잡혀 구속된 인사 중에는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자들도 있었다. 농성장에 들어가 선동을 하고 노조의 투쟁방식에 훈수를 둔 외부 인사들은 계약과 교섭을 통한 일자리 지키기보다는 사회변혁 투쟁에 매몰돼 있는 세력이다.

“노동계는 진보 아닌 수구 진영”

현대자동차 정병문 상무는 최근 노동문제 세미나에서 “우리 노동계의 배후에는 마르크스주의 마오쩌둥주의 심지어는 김일성주의까지 들어와 있다”고 말했다. “노동계를 진보진영이라고 하지만 거꾸로 완고한 수구입니다. 시대가 바뀌어도 변함이 없습니다. 교섭은 없고 폭력과 떼쓰기로 사내의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기업의욕을 꺾고 있습니다.”

한국의 노동운동이 세계에 유례없이 과격해지고 이념화한 연원은 권위주의 정권이 산업화를 위해 노동운동을 억압하던 시절 산업현장에 파고들어간 좌파이념 세력의 영향이 크다. 1987년 노동운동의 대폭발이 일어났을 때 앞만 보고 돌진했던 30대 주역들은 대부분 50줄에 들어섰다.

대폭발로부터 22년이 흐른 지금 한국의 노동운동도 철이 들고 합리적으로 바뀔 때가 됐다. 폭력적 사회변혁적 노동운동으로는 일자리를 지키지도 못하고, 근로자들이 행복하게 작업하는 일터를 만들 수도 없음이 쌍용차 사태에서 다시 확인됐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