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위용]‘나로호의 눈물’ 잊지 말아야

  • 입력 2009년 8월 4일 02시 59분


“당장 이익이 나지 않으면 우주선 사업에 뛰어들 것 같지 않은 나라였는데 몇 년 전부터 마음을 바꿔 우주선 발사를 준비했다니 놀랍기만 하네요.”

나로호 발사 한 달을 앞둔 지난달 10일 러시아 연방우주청 관리에게 들은 말이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무인 우주선을 쏘아올린 나라의 자부심과 우주선 발사 후발 주자인 한국의 투자 방식에 대한 비판이 섞여 있었다.

나로호의 1단 로켓과 연료가 한국산이 아닌 러시아 제품이어서 비판은 무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한국의 우주선 발사 준비 과정을 되돌아보게 됐다.

러시아는 지금까지 나로우주센터 건설과 나로호 부품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우월한 ‘갑’의 위세를 떨쳤다. 러시아 측이 기술 이전을 거부하거나 부품 조달에 문제가 생겨 나로호 발사가 5차례 연기된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러시아는 또 한국이 우주선 연료 주입에 대해 문의할 때마다 수많은 보안 전문가를 한국에 보내 기술 유출 여부를 감시해 왔다. 한국은 최초 우주인 배출 사업 등을 명목으로 250억 원 이상을 러시아에 쏟아 부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나로호 발사체 제공 과정에서 뻣뻣한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우주선 발사에 들어가는 기술은 돈만으로 해결되지 않았던 셈이다.

이런 사연을 뒤로하고 나로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된다면 온 국민이 축하할 일이다. 우리 국력의 신장을 보여줄 기회이자 미래 성장동력인 우주 산업의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로호 발사가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다가 번번이 기술 수입국인 ‘을’의 위치에서 수출국에 휘둘려 온 한국의 과거와 현실까지 한 방에 날려 보내지는 못할 것이다.

전문가들은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우주선 발사 자체는 이익이 나는 장사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미국이 냉전시절에 설계했던 우주선 발사 센터를 구조조정하거나 러시아가 우주 기지를 축소하는 사정도 같은 맥락이다. 그럼에도 러시아 항공청 기획실의 세르게이 보로비요프 씨는 “전략적 선행 투자가 우주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른다”고 말했다. 미국과 러시아가 수십 년 앞을 내다보고 국가 전략 차원에서 자원을 동원해 왔기 때문에 우주 선진국으로 올라섰다는 것이다. 만일 한국이 10여 년 전부터 선행 투자를 착실히 해 왔다면 지금 나로호 부품의 국산화는 훨씬 더 진척됐을 것이고, 우주선 발사에 따른 파생 산업도 꽃을 피울 단계에 와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로도 들렸다.

나로호와 같은 시행착오를 막으려면 미래 성장동력 산업에 투자할 수 있는 국력을 키운 뒤 10년 앞을 내다보는 국가 전략과 긴 호흡의 자금 투입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위용 교육복지부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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