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하종대]中소수민족 정책의 딜레마

  • 입력 2009년 7월 29일 02시 59분


1954년 2월 랴오닝(遼寧), 지린(吉林), 헤이룽장(黑龍江) 성 등 동북 3성의 최고책임자였던 가오강(高崗) 중국 공산당 동북국(東北局) 제1서기가 이 지역의 ‘폭넓은 자치’를 주장했다가 분리주의자로 몰려 축출됐다. 혁명 동지인 마오쩌둥(毛澤東)의 호된 비판을 받았던 그는 6개월 뒤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중국은 한(漢)족이 전체 인구의 90.6%를 차지하는 나라이지만 지역에 따라 언어와 풍습이 크게 다르다. 표준어인 푸퉁화(普通話)와 6대 방언으로 불리는 우(吳)어, 웨(월)어 등은 서로 다른 나라의 말로 여겨질 정도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동북인과 입으로만 싸우는 남방인의 기질 역시 서로 다른 민족 이상으로 차이가 많다.

55개 소수민족과 한족의 차이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유목이 생업인 티베트, 위구르 족과 농사를 주로 하는 한족은 언어 풍속은 물론 가족관과 가치관이 크게 다르다. 한족과 같은 울타리에서 생활한 역사가 짧은 이들은 기회만 있으면 분리 독립을 꿈꾼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국의 지도자들은 기회만 있으면 ‘링투완정(領土完整·영토의 보전)’을 부르짖는다. 이는 헌법에도 명시돼 있다. 제4조는 “각 민족의 자치지역은 중국으로부터 분리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못 박고 있다. 나아가 “중국 공민은 국가의 통일과 각 민족 단결의 의무를 진다(제52조)”라고 규정해 분리 독립의 방지 의무를 국민 개개인에게까지 지우고 있다.

하지만 소수민족의 분리 독립 움직임은 갈수록 확산되는 분위기다. 지난해 3월 베이징(北京) 올림픽을 앞두고 티베트에서 자치를 위한 대규모 군중시위가 일더니 최근엔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의 수도 우루무치(烏魯木齊)에서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유혈사태로 197명이 숨지고 1700여 명이 부상했다.

중국 정부는 이를 극단적인 세력의 범죄라고 주장했지만 이들 소수민족은 중국 정부의 차별정책이 근본 원인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항상 “중국에는 민족 차별이 없다”며 소수민족에게 부여하는 특혜를 강조한다. 소수민족 자녀에게는 대학에 들어갈 때 우대점수를 준다. 한족에게는 엄격한 ‘한 가정 한 자녀 정책’도 소수민족에겐 2, 3인까지 허용한다. 범죄를 처리할 때도 체포와 사형은 가급적 줄이고 관용을 먼저 베푼다는 ‘량사오이콴(兩少一寬)’ 정책을 시행한다.

하지만 소수민족이 느끼는 ‘차별’은 여전하다. 우선 중국 최고 권력기관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9명 중 소수민족 출신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경제적 격차도 크다. 지난해 티베트 자치구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만3861위안(약 251만 원)으로 중국 전체 평균 2만2698위안(약 411만 원)의 61.1%에 불과했다.

문제는 점차 가열되는 소수민족의 독립 의지를 무력으로만 진압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사회가 개방화되고 국제화되면서 언론 집회 시위 결사의 자유를 요구하는 중국 인민의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다. 자유롭게 말할 자유가 주어지면 소수민족의 독립시위는 더욱 늘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런 기본권조차 박탈한 상태에서는 중국 지도부가 추구하는 경쟁력 있는 국가는 이룩할 수도 없다.

중국의 학자들은 앞으로 15∼20년 안에 중국 지도부가 소수민족 딜레마에 빠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960만 km²의 거대한 영토를 보전하면서 풍요로운 선진사회를 이룩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름하는 운명의 순간이 뚜벅뚜벅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하종대 국제부 차장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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