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내황]5만 원권, 경제활력소 됐으면

  • 입력 2009년 6월 26일 02시 58분


대한민국의 새로운 얼굴인 5만 원권 지폐가 23일부터 유통되기 시작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예술가이자 시인인 신사임당을 도안의 중심에 두고 첨단 위조방지장치를 적용했다. 1만 원권 지폐가 1973년 고액권으로 처음 모습을 보인 지 36년 만의 일이다. 다소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늦게 태어난 만큼 국민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면 좋겠다.

그동안 여러 사정으로 경제규모에 걸맞은 새로운 고액권이 유통되지 못함으로써 우리는 자기앞수표 사용에 따른 사회적 비용과 함께 화폐 사용에서 크고 작은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5만 원권은 이런 사회적 비용과 불편을 상당 부분 해소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새 고액권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갈증이 그동안 얼마나 컸던가는 다음의 숫자를 통해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첫날 한국은행에서 풀려나간 5만 원권(1조6462억 원)이 시중에 유통 중인 지폐의 5.5%(금액 기준)를 차지함으로써 5000원권(3.4%)과 1000원권(3.9%)의 비중을 단숨에 뛰어넘었다.

화폐는 기능적으로만 보면 거래의 결제수단 또는 가치저장수단에 불과하다. 하지만 화폐는 늘 그 이상의 의미와 상징으로 우리 곁에 있어 왔다. 우리나라의 현대 화폐사는 발권은행인 한국은행 설립과 함께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출발은 녹녹하지 않았다. 한국은행이 1950년 6월 12일 설립되고 2주도 지나지 않아 전쟁이 발발했다. 이런 사정으로 첫 번째 한국은행권인 100원(圓)권과 1000원권이 1950년 7월 22일 서울이 아닌 대구에서 발행됐다. 전쟁이 1953년에 끝나자 화폐개혁이 뒤따랐다. 전시 인플레이션 수습을 위한 조치로 화폐단위가 ‘원’에서 ‘환’으로 바뀌고 액면가도 100분의 1로 줄었다. 불과 9년 뒤인 1962년에도 다시 한번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그동안의 ‘환’이 한글 ‘원’으로 이름이 바뀌고 액면가가 다시 10분의 1로 줄었다.

이때까지 한국은행은 모두 21종의 지폐를 발행했다. 그리고 1962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은행이 30종의 지폐를 더 발행했으니 이번 5만 원권은 한국은행이 발행한 51번째 지폐가 된다. 그사이 석굴암을 도안으로 삼아 1972년에 1만 원권을 발행하려다가 종교계의 반발에 부닥쳐 세종대왕으로 도안을 바꿔 이듬해 발행했다. 1977년 5000원권을 새로 발행할 때에는 이전에 발행한 5000원권(1972년)의 율곡 초상이 외국인의 모습을 닮았다는 세간의 지적을 반영하는 등 크고 작은 일화가 많았다.

화폐제도적 측면에서 보면 그동안 두 차례의 큰 변화가 있었다. 지폐 크기를 정하는 방식이 종래 가로 세로 확대형에서 1983년에 가로 확대 세로 고정형으로 변하고, 지폐용지의 원료가 솜 또는 펄프에서 순면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2006년 새 5000원권 발행을 시작으로 다시 한번 지폐의 크기를 사용하기 편하게 줄이고 현대적 감각에 맞게 도안을 조정했다. 아울러 새로운 위조방지장치도 추가했다. 초창기 평판인쇄에 의존하던 지폐제조기술도 그사이 괄목할 만하게 발전했다. 지금은 수준 높은 볼록인쇄기술이나 스크린인쇄기술을 지폐 제조에 적용한다.

이처럼 한국은행이 설립된 후 59년 동안 발행된 수십 종류의 화폐는 우리 경제의 증인으로 현대사의 역동성만큼이나 많은 변화와 사연을 담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 화폐의 선두에는 5만 원권이 서 있다. 부드럽고도 당당한 5만 원권의 모습처럼 우리 경제도 더욱 힘차고 튼튼하게 발전하기를 기대해 본다.

이내황 한국은행 발권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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