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만우]세율 인하하되, 감면은 축소를

  • 입력 2009년 6월 24일 02시 59분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침체 극복을 위해 대규모 감세와 추경예산이 실행됐다. 불황과 세율인하가 맞물려 세수가 대폭 감소되고 추경까지 가세해 재정적자는 금년분만으로도 53조 원이 추가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씀씀이를 줄이고 세제 합리화에 박차를 가하지 않으면 적자재정으로 인한 국가채무는 마른 날 산불처럼 확산될 고위험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 세제는 명목세율은 경쟁대상국보다 높은 데 비해 비과세 감면규정이 과다해 복잡하고 비효율적이다. 감면규정을 남발해 놓고는 감면총액의 상한을 묶어 두기 위해 전문가도 혀를 내두를 만큼 복잡한 최저한세를 규정했다. 세금에 덧씌우거나 감면분 중 일부를 토해내게 하는 교육세와 농어촌특별세 등 목적세까지 가세해 세금종목은 31개나 되는데 20개 내외의 세목을 유지하는 선진국에 비해 매우 후진적이다.

세금 종목이 많고 과세대상도 중복으로 얽혀 있는 반면에 과세를 피할 예외사항도 다양하고 복잡하다. 세제의 복잡성은 국민의 납세의식을 저하시키고 저조한 과세포착률과 과도한 징세비용 등의 부작용을 수반한다. 문민정부 이후 역대 정부는 예외 없이 감면제도와 목적세 정비를 통한 조세체계 간소화를 주요 정책과제로 추진했다. 앞장서서 추진하던 세제실장이 정부여당과 야당의 주요 정책라인에 자리 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간소화를 통한 ‘알기 쉬운 세제’는 인기 없는 애물단지로 외면당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법인세 대폭인하(최고세율 25%→20%)는 명목세율을 낮추는 대신 불요불급한 비과세 감면 정비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비과세 감면 폐지로 인해 세 부담이 늘어나는 기득권 집단이 집요하게 발목을 잡고 있다. 특히 대통령의 국회 장악력이 크게 떨어지고 총대를 멜 추진세력도 없는 상황에서 ‘비과세 감면 정비’라는 비인기 정책에 대한 국회의 장벽은 높기만 하다.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는 상황에서도 야당은 비과세 감면을 옹호하면서 오히려 세율 재인상을 주장하고 여당은 비과세 감면의 축소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이다. 목적세의 경우도 교육세 부분을 옮겨 추가한 개별소비세 인상안은 통과시켜 놓고도 수혜집단의 눈치를 살피느라 폐지법안의 처리는 미루는 상황이다.

법인세 인하를 ‘부자를 위한 감세’로 몰아붙이는 일은 논리적 비약이다. 세율이 주변 국가보다 높으면 생산설비와 기업이익을 저세율국으로 이전할 유인이 높아진다. 세금을 더 받으려다 일자리까지 놓치는 ‘닭 쫓던 개’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기업은 신규사업에서 세금을 감안한 현금유입이 투자비용을 초과할 경우 투자안을 채택하므로 세율인하는 긍정적 요인이 된다. 세율인하는 투자증대로 양질의 일자리를 공급할 뿐만 아니라 생산시설의 해외이전을 억제하고 외국인 투자유치를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 결국 법인세 인하는 ‘부자를 위한 감세’라기보다는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투자를 위한 감세’로 이해해야 한다.

애덤 스미스는 과세기준의 준거인 조세원칙으로 평등성 확실성 편의성 경제성을 들었다. 비과세 감면은 특정 대상에 제한적이고도 한시적으로 적용하므로 평등성과 확실성 측면에서, 목적세는 동일 대상에 중복적으로 부과하므로 편의성과 경제성에서 문제가 있다. 과다한 비과세 감면과 중복적 목적세는 세제의 불평등 불확실성 복잡성 비효율을 초래하는 걸림돌이다.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적 계산은 접어두고 조세원칙의 정석에 따라 비과세 감면 정비와 목적세 폐지를 여야 합의로 조속히 마무리해야 한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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