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엽]대박은 쪽박의 시작

  • 입력 2009년 5월 28일 02시 59분


로또로 횡재한 이들이 도벽이나 가족 갈등으로 불행해졌다는 뉴스를 자주 듣는다. 대박이 쪽박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흥행 산업인 국내 가요와 영화계도 이런 일을 겪고 있다. 지금은 가요 시장이 초라하지만 10여 년 전엔 촉망받았다. 김건모 신승훈 조관우 듀스 등 대박 스타들이 잇달았다. 50만 장 판매는 예사였고 밀리언셀러도 흔했다. 1996년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은 280만 장을 기록했다. 기획자들은 대박을 꿈꾸며 10만∼20만 장 음반은 보지도 않았다. 요즘은 10만 장만 나가도 히트다.

가요계는 휴대전화 등 매체 변화에 대응하지도 못했지만 ‘대박과 한탕주의’에 빠져 시장을 세분화 다양화하지 못했다. 대박에서 쪽박으로 추락하는 과정은 이랬다. 시장의 팽창에 따른 일부의 대박→한탕주의 확산→투자 러시→과잉투자와 과당경쟁→닮은꼴 콘텐츠 양산→시장의 외면과 수익률 악화→시장 축소와 쪽박. 기획자들은 외부 투자금을 ‘자기 돈’처럼 썼고 흥행을 보장하는 가수와 음악에만 몰두했다. 홍보수단에 불과한 뮤직비디오에 1억 원을 쏟기도 했다. 반복되는 판박이 콘텐츠에 팬들은 돌아섰다.

국내 영화도 그랬다. 1999년 ‘쉬리’의 대박과 ‘친구’(2001년) 등에 힘입어 100억 원을 넘게 들인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이어졌다. ‘태극기 휘날리며’(2004년)의 1174만 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에 이어 ‘왕의 남자’(2005년) 1230만 명, ‘괴물’(2006년) 1300만 명으로 신기록이 잇달았다. 2007년에는 ‘디워’가 824만 명을 기록했다. 이 사이 ‘300만 명 흥행작’도 즐비했고 ‘웰컴투 동막골’ ‘타짜’ ‘투사부일체’ ‘화려한 휴가’는 600만∼800만 명을 .기록했다.

이로 보면 10년 대박 행진인 듯하지만 이때 쪽박의 조짐도 시작됐다. 영진위는 2007년 영화산업결산에서 “2000년 이후 영화산업은 매년 40%를 웃도는 점유율을 보였으나 수익성이 악화됐으며 2007년은 불황이 본격화된 해”라고 진단했다. 2007년 투자수익률은 ―40.5%였다. 2008년은 ‘추격자’ 등이 있으나 ―30%로 추정된다.

영화 제작자들도 대박 환상에 빠져 스타 캐스팅과 마케팅에 과잉 투자했고, 비(非)문화 펀드는 영화계의 ‘머니 게임’을 부채질했다. 영화의 ‘빈익빈 부익부’가 두드러졌고 조폭영화 등 닮은꼴이 이어졌다. 가수 강산에도 인물과 사상 6월호 인터뷰에서 “1000만 명을 기록할 때 김C(가수)에게 한국영화가 망하겠다고 했다. 음악 시장과 너무 똑같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번에는 국내 뮤지컬이 이 롤러코스터를 탄 듯하다. 2001년 ‘오페라의 유령’의 대박 이후 ‘맘마미아’ ‘미녀는 괴로워’ 등 흥행작이 이어지면서 4, 5년 전 거품론이 대두됐다. 2007년 160여 편, 2008년 135편으로 작품이 쏟아졌다. 최근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출연료 지급 문제로 잠시 중단됐고, 공연을 앞두고 투자를 받지 못해 넘어진 작품도 있다. 100억 원(드림걸즈), 240억 원(오페라의 유령)을 비롯해 수십억 원을 들인 작품이 이어지면서 수익 구조도 걱정된다. 윤호진 한국뮤지컬협회장은 “영화와 비슷한 길을 걷는 듯하나 지금 조정기를 거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 다행이지만 가요나 영화계를 휩쓸고 지나간 ‘대박 유령’의 실체는 인간의 탐욕이다. 그 탐욕은 바닥에 가서야 보인다. 뮤지컬계가 어지럼증을 느낀다면 롤러코스터에서 내려야 한다. 대박은 하늘의 뜻이나 쪽박은 사람의 일이기 때문이다. 대박은 하늘이 내리지만 쪽박은 사람이 막을 수 있다.

허엽 문화부장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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