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이헌진]신종 플루보다 빠른 中방역

  • 입력 2009년 5월 25일 02시 51분


24일 오후 8시 현재 한국의 신종 인플루엔자A(H1N1) 감염자는 21명이다. 그런데 한국보다 인구는 27배 많고 면적은 97배 큰 중국은 감염자가 8명이다. 대단한 선방이다. 세계 각국과 세계보건기구(WHO)는 중국의 이 같은 철통방역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면전의 찬사와 달리 뒷전에서는 상황이 다른 듯하다. 일부 세계 보건 전문가들은 중국이 혹시 제대로 환자를 찾아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실제 발병률을 감추는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고 한다.

요즘 중국 전역에서 전염병인 수족구병이 창궐하는 것을 봐도 중국의 신종 인플루엔자 감염자 수는 의심스러울 만큼 적다. 이에 앞서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때 발생 사실을 한동안 감춘 전력을 감안하면 이런 의심이 무례하다고 몰아치기도 어렵다. 이런 의심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중국의 신종 인플루엔자 대처는 다른 나라보다 강도가 훨씬 높은 조치가 많다. 외교적 마찰까지 감수한 입국자 검사와 격리,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친밀접촉자 수색, 병이 만연한 지역의 자국 유학생에 대한 유·무형의 입국 자제 요청은 ‘지나치다’는 비판까지 나올 정도다.

이런 조치 가운데 특히 주목을 끄는 게 정보 공개다. 신종 인플루엔자가 등장한 이래 중국의 대표 포털 사이트인 신랑(新浪), 써우후(搜狐), 텅쉰(騰訊), 왕이(網易) 등은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신종 인플루엔자 전문코너를 배치하고 있다. 신종 인플루엔자와 관련한 모든 정보가 이곳에 모인다.

중국 전역은 물론 세계 각국의 환자 발생 최신 현황도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중국 지도와 세계 지도에서 지역별 환자 수와 치료 현황, 유사환자 및 격리자의 수가 시시각각 바뀌는 걸 보면 올림픽 메달 중계에 맞먹는다. 환자의 동선(動線)을 샅샅이 공개하기도 한다. 육하원칙에 따라 감염자의 주요 일정을 표시하고 ‘감염자와 같은 열차 객실에 있던 승객 93명 가운데 88명의 소재 파악’ 등 방역 상황이 곁들여져 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 등 주요 언론사도 마찬가지다. 신화통신의 신종 인플루엔자 전용 코너에는 24일 오전 현재 관련 동영상만 140여 편이 모아져 있다. 최신 소식란에는 하루에도 수십 건이 게재된다.

한국은 이런 면에서 중국보다 한 수 아래인 듯하다. 한국의 주요 포털 홈페이지에 신종 인플루엔자 소식은 일반 뉴스와 비슷하게 취급된다. ‘신종 인플루엔자A(H1N1) 제대로 알고 대처하기’ 코너에는 7일자로 ‘돼지 살코기, 안심하고 드세요’가 최신 소식으로 올라와 있다. 질병관리본부 홈페이지 전용 코너 역시 중국보다 내용이 풍부하지도, 소식이 빠르게 전해지지도 않는다.

그래도 한국은 미국보다는 나은 모양이다. 중국 언론은 미국을 향해 수천 명의 감염자가 발생해 해외로 수출하고 있으면서도 신종 인플루엔자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소홀히 취급한다’며 자주 비판한다. 미국에서 온 감염자가 중국 방역 당국에 “우리 동네는 너무 조용해 아무 일도 없는 줄 알았다”고 말했을 때 분통이 터졌다는 중국 방역 당국자 말도 들린다. 중국인 감염자 8명 중 4명은 미국에서 왔다.

6년 전 사스 때는 상황이 정반대였다. 중국은 전염 상황을 감췄다가 세계 각국으로부터 호되게 비판을 당했다. 전염병 방역은 유언비어를 차단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한다. ‘옷깃만 스쳐도 전염된다’는 식의 엉뚱한 소문이 퍼지면 사람들은 공황 상태에 빠지고 이성적 대처는 마비된다. 이번의 투명한 정보 공개에 비춰볼 때 중국은 사스 때의 교훈을 제대로 배운 것 같다.

이헌진 베이징특파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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