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동근의 투자는 심리전이다]남이 두려워할때 즐거워할 준비를 하라

  • 입력 2009년 5월 18일 02시 58분


“공포 느끼는 순간 생각은 정지…미확인 뉴스에 두려움 가지면 목숨은 건지지만 투자는 실패”

《‘개미’들의 직접투자가 많은 경우 실패로 돌아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사실 투자의 원칙이나 이론들은 개인투자자들도 익히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원칙들은 자신의 변덕스러운 심리상태에 따라 무너지기 십상이다. 주가가 오를 때는 더 오를 것 같은 자만, 또 떨어지면 더 떨어질 것 같은 공포 등이 그것이다. 이 밖에도 확증편견, 군중심리, 지속편견 등 개인들이 피해야 할 잘못된 투자 심리는 수없이 많다. 개인투자자들이 ‘대가’들의 투자전략을 따라 해도 손해를 보는 이유는 이처럼 인간의 본능에 대한 통찰 없이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본보는 가치투자의 대가인 ‘워런 버핏 따라하기’ 칼럼의 후속으로 행동 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적 관점에서 각종 투자에 대한 잘못된 의사결정을 되짚어보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하우를 담은 ‘송동근의 투자는 심리전이다’ 시리즈를 연재한다.》

인간은 실체를 알 수 없는 위험이 감지되면 실체를 따지지 않고 우선 도망가도록 진화해 왔다. 뱀이 나타났는데 이 뱀이 독이 있는지 없는지 따지기보다는, 두려움을 느끼면 즉각 도망가는 사람의 생존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남은 선조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인간은 두려움을 느끼면 일단 합리적인 판단을 정지하고 무조건 도망을 가도록 설계돼 있다. 이런 속성은 투자시장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인간의 이런 특성을 이해한 투자자에게는 다른 투자자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순간이 좋은 투자기회가 된다.

신종 인플루엔자A(H1N1)가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다행히 한국에서는 더 확산되고 있지 않지만 세계적으론 아직 불안한 상태다. 신종 인플루엔자는 처음에는 돼지독감이라고 불렸다. 그 이후에는 돼지인플루엔자, 또 돼지라는 말이 들어가는 게 부담이 돼서인지 SI(swine influenza)라고 부르다가, 다시 이는 돼지와는 상관없다는 업계의 의견을 받아들여 마침내 신종 인플루엔자라고 공식적으로 부르게 됐다.

왜 이렇게 독감 이름 하나 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을까? 이 독감바이러스가 새로운 종(種)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영향이 크지 않지만, 초기에는 그 불안감에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증시가 2, 3일 동안 출렁이며 다소 긴박한 상황을 연출했다. 이렇게 새로운 악재에는 사람들이 과하게 반응한다. 특히 그것의 강도를 가늠할 수 없는 때일수록 더하다. 예전의 광우병이 그랬고 조류인플루엔자(AI), 그리고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이 그랬다. 전염병뿐 아니라 9·11테러 같은 불확실하고 충격적인 사건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초기에 과잉 반응했다. 그 후 미국 워싱턴 지역에서 발생한 ‘침묵의 연쇄살인 사건’과 탄저균 사건, 그리고 잇단 테러공포로 미국은 당시 전쟁 중이던 아프가니스탄만큼이나 여행하기 위험한 나라로 인식된 적도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미국이 그 당시 그렇게 위험한 지역이었을까?

어느 날 밤 한 젊은이가 외진 산길을 걷고 있었다. 이 산길엔 가끔 호랑이가 나타나 어린아이를 물어갔다는 말을 전해 들은 터였다. 그런데 저쪽 수풀에서 갑자기 부스럭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젊은이는 무섭게 번쩍이는 두 눈을 보고 말았다. 순간 “호랑이다”라고 속으로 외치고 젊은이는 뛰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얼마를 뛰었을까. 마을에 당도한 젊은이는 마을 사람들에게 호랑이를 보았다며 당시 위급했던 상황을 얘기했다.

그럼 젊은이가 본 게 정말 호랑이였을까? 뭔가 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정말 호랑이인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그 젊은이의 판단은 옳았다. 만약 젊은이가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 수풀에 더 다가갔다가 진짜 호랑이와 맞닥뜨렸다면 그는 생명을 부지하지 어려웠을 것이다. 이럴 때 ‘호랑이면 도망가고 호랑이가 아니면 도망가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확인하기 전에 “호랑이일지도 모른다”라고 최악을 가정하고 냅다 도망가는 게 사는 길이다.

하지만 주식시장은 다르다. 확인할 수 없는 모든 일에 무조건 최악을 가정하는 것은 손해로 가는 길이다. 잘 모르는 악재가 터질 때마다 투자자들은 가진 주식을 싼 가격에 내다팔아 손실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주식시장은 모든 뉴스가 들어오는 곳이다. 확인되지 않은 수많은 뉴스에 두려움을 느끼고 행동하면 목숨을 건질 수는 있지만 투자에서는 실패하기 십상이다.

멘털 투자자는 두려움에 대한 과민반응 메커니즘을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기쁨 슬픔 노여움 등의 다른 감정과는 다르다. 그것을 느끼는 순간 생각은 정지되고 만다. 무서움 때문에 뭐든 냉정하게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 이 두려움의 가장 큰 폐해다.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사태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는 도저히 그 규모를 가늠할 수 없었다. 그리고 투자자들이 사태를 확인하기 전에 도망부터 가면서 시장은 어김없이 대폭락을 했다. 그 후 위기의 진전은 별로 없었지만 그 규모는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미국에선 정리될 기업들의 윤곽이 나타나고, 폭락한 주택시장에도 최근 시세가 조금씩 형성되고 있다. 아직 다소 논란은 있지만 금융회사들을 상대로 실시한 스트레스 테스트도 부실 측정에 있어 한 단계 진전으로 볼 수 있다.

엄청난 하락장을 경험했던 세계 증시는 최근 두어 달 동안 다시 반등을 이어가고 있다. 코스피도 50% 가까이 올랐다. 사람들의 과도했던 공포심리가 이를 이용하는 현명한 투자자들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됐던 것이다.

대신증권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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