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종식]아직도 영세상인 울리는 임대차보호법

  • 입력 2009년 5월 11일 02시 57분


약사인 조모 씨는 2005년 5월부터 경기 안산시에 있는 건물 1층 상가를 보증금 5000만 원에 월세 90만 원을 내고 3년간 빌렸다. 약국을 운영하던 조 씨는 2007년 8월 건물주가 바뀌면서 상가를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조 씨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임대 후 5년 동안 상가를 계속 빌려 쓸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건물주는 조 씨의 약국이 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반박했다. 이 법의 보호를 받으려면 임대 상가의 환산보증금이 1억4000만 원 이하(2005년 계약 당시 안산시 기준)여야 하는데 조 씨의 약국은 이 기준을 넘어선다는 것.

환산보증금은 ‘월세에 100을 곱한 뒤 보증금을 더한 가격’. 그러나 대부분의 건물주들은 월세에 부가세 10%를 더해 계산하는 방식으로 환산보증금을 높여 임대차보호법을 피해가고 있다. 조 씨는 “부가세를 빼고 계산하면 보호대상이 된다”고 반발했고 건물주는 누가 맞는지 가려달라며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건물주의 손을 들어줬지만 2심 재판부는 달랐다. 수원지법 민사1부는 “건물주가 임차인에게 부가세를 별도로 징수하는 점 등에 비춰볼 때 부가세를 월세에 포함시켜 환산보증금을 계산할 이유가 없다”며 건물주에게 패소 판결했다고 10일 밝혔다.

환산보증금의 계산방식에 구멍이 뚫려있는 것은 물론 비싼 임대료에 비해 환산보증금 기준이 낮은 것도 문제다. 서울의 경우 환산보증금 기준이 2억6000만 원,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은 2억1000만 원이다. 이 때문에 50∼66m² 규모의 수도권 대다수 영세 상가들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최광석 변호사는 “모호하고 낮은 환산보증금 기준 때문에 이 법의 보호를 받는 영세 상인은 전체의 15% 안팎에 불과하다”며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수천∼수만 명의 임차인들이 추가로 혜택을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영세 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2002년 11월 도입한 이 법은 영세 상가의 임대료 상한선을 5년 동안 연간 9%로 묶어 놨다. 하지만 일부 건물주들은 ‘9% 조항’을 악용해 매년 상한선까지 임대료를 올리고 있다. 영세 자영업자들을 보호하려고 만든 상가임대차보호법이 법 자체의 허점 때문에 거꾸로 이들을 옥죄는 현상을 빚고 있는 것이다.

경기 침체로 올해 초 자영업자는 그 수가 9년 만에 최저치(559만 명)를 기록하며 몰락하고 있다. ‘물가 및 부동산 시세와 연계되는 임대료 연동제’ 등 법 개정을 요구하는 영세 상인들의 목소리에 정부와 국회가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이종식 사회부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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