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성훈]‘맞춤 신약’ 개발 기회가 왔다

  • 입력 2009년 5월 9일 02시 56분


신종 인플루엔자A(H1N1)가 확산되면서 간신히 회복기를 보이던 세계경제에 다시 치명타를 입혔다. 증상이 예상보다 경미하다고는 하나 아직도 감염경로가 미궁인 상태로 사태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에서도 감염자가 발생함에 따라 당국이 검역과 환자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직 진행형이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중 하나는 국가와 국민의 존폐에 대한 도전이다. 신종 질병에 대한 위협의 빈도와 강도가 지속적으로 늘어난다. 수년 전 전 세계를 긴장시켰던 조류인플루엔자에 이어 올해는 신종 인플루엔자 공포가 엄습했다. 글로벌 사회 패턴과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볼 때 앞으로도 인류와 국가의 존폐를 위협하는 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독감 치료제인 타미플루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 부자 나라의 사재기로 공급 부족 사태를 맞고 있고 이는 가난한 아시아 개도국 국민의 생명에 치명적 영향을 줄 것이다.

신종 질병의 위협이 시사하는 다른 측면은 이 도전이 국부 창출의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타미플루를 독점 생산하는 다국적 제약사 로슈는 조류인플루엔자에 이은 신종 인플루엔자로 막대한 이익을 창출한다. 로슈는 지난해 이 약으로만 1조2999억 원의 수입을 올렸다. 타미플루 실제 개발사는 미국의 신약 벤처회사였던 길리어드(Gilead)이며 개발을 주도한 사람이 대한민국 과학자인 김정은 박사임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로슈는 이 약의 특허권을 길리어드로부터 획득했다. 초기에는 이렇게까지 세계인의 생명을 구하고 이익을 창출할 수 있으리라 예상하지 않았겠지만 이 점이 신약 창출의 의미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신종 인플루엔자를 계기로 우리 현실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국내 분위기는 신약 개발비용이 많이 들고 개발이 어려우며 장기간이 소요된다는 이유로 정부나 기업이나 과감한 투자를 주저하는 형편이다. 과학자의 아이디어가 신약 창출로 이어지도록 지원한 길리어드사, 타미플루의 가치를 보고 이를 산업화로 이끈 로슈사가 없었다면 아이디어는 연구실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 채 전 세계 많은 생명이 신종 인플루엔자에 죽어가는 모습을 무력하게 목도하여야 했을 것이다. 개발에 관여한 두 기업도 이같이 큰 이윤을 창출하지 못했을 것이다.

신약 개발 시장은 급격히 변하고 있다. 신종 질병의 창궐과 약제내성으로 무장한 기존 병원균의 부활, 고령 인구와 현대인의 생활 패턴에서 유래하는 암 당뇨 치매 등 난치 질환의 지속적 증가, 생명공학의 발달이 환경변화의 큰 요인을 제공한다. 여기에 경제위기와 기술 혁신 부족으로 다국적 제약사는 혁신 신약 창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에게는 기회의 요인이 될 수 있다. 최근 신약 개발이 개인 맞춤의약으로 진행됨에 따라 블록버스터형을 추구하는 다국적 제약사보다는 기술 독점력이 강한 맞춤형 신약을 추구하는 중소형 기업이 경쟁에 유리하다.

중소형 기업이 주로 포진한 제약업계 현황, 기초생명과학 연구 기반의 충실함, 우수한 정보기술(IT) 및 공학기술을 가진 국내 환경은 도약을 위한 절호의 기회이다. 이때를 놓치면 신약 선진국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국민의 생명을 외국에 의탁하고 외국 기업이 돈을 버는 모습을 보고만 있어야 할지 모른다. 우리는 IT 제철 조선 등의 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이룩한 저력의 국민이다. 국부의 창출과 인류의 생명을 구하는 사명을 해결하고 국가의 브랜드를 제고할 수 있는 사례는 흔치 않다. 이제는 신약이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때이다.

김성훈 서울대 제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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