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MB-박희태 회동, 修辭만 남겨선 안 된다

  • 입력 2009년 5월 2일 02시 57분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6일 조찬회동을 갖고 4·29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 정국 현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하지만 국정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 없이는 당(黨)-청(靑) 간에 백날 만나봤자 소득은 없이 헛바퀴 도는 소리만 나올 것이다. 청와대 참모들은 5곳의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완패한 데 대해 “동네선거에 불과한 것”이라고 의미를 애써 축소했다. 이렇게 가벼운 인식으로는 이 정권과 한나라당이 정치적 무기력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한나라당의 전패(全敗)는 결코 우연이라고 볼 수 없다. 경주만 해도 박근혜 전 대표의 의중(意中)이 통하는 지역이고 지난해 4·9총선 때 내세웠던 정종복 후보가 낙선했는데도 무리하게 공천을 밀어붙였다. ‘박심(朴心)’을 업은 후보의 사퇴를 종용했다는 논란까지 불거져 박 전 대표가 “우리 정치의 수치”라고 말한 순간 선거는 끝났다고 봐야 한다. 포항과 거리가 있는 경주의 소(小) 지역정서를 무시한 채 이상득 의원의 측근 후보에게 집착했다. 정치적 편협성에다 상상력 빈곤이 빚은 실책이다.

인천 부평을도 마찬가지다. 지역 주민들의 자존심은 무시한 채 연고도, 지역 활동 경력도 전무한 인사를 뒤늦게 낙하산식으로 공천해 패배를 자초했다. 이번 국회의원 재선거 참패야말로 집권 핵심세력의 무능력 무전략 무계(無計)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대통령의 책임도 적지 않다. 국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자면 통합적 지도력이 필수적이다. 이번 재선거에서도 친이-친박계 갈등이 도드라졌다. 좀 더 경쟁력 있는 인물을 내세우지 못한 데 이어 완패 후 마땅한 쇄신책조차 내지 못해 고민하는 걸 보면 ‘친목단체 수준’에 불과한 한나라당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제 국회 본회의에서 금융지주회사법안 부결 사태도 돌발성 사건으로 보기 어렵다. 여당 소속 상임위원장이 통과시킨 개정안을 같은 당 원내대표가 민주당과의 합의로 수정한 데 대한 내부 반발로 원안(原案)과 수정안이 모두 부결되는 자중지란이 벌어졌다. 도대체 이 정권에 국정운용 전략이란 것이 있기나 한지 모르겠다. 이 대통령은 어제 국회 일부 여야 상임위원장에게 직접 전화해 추경예산안과 핵심 법안 처리에 협조해준 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진작에 국회와 이렇게 호흡을 맞췄더라면 그제처럼 황당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나라당은 경기 시흥시장 보궐선거까지 계산에 넣을 경우 0 대 6으로 깨졌다. 이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깨달음이 없다면 향후 선거는 물론이고 국정 운영에서도 숱한 장애물을 만날 수밖에 없다. 재·보선 후 여론조사에서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떨어진 것도 당연한 결과다.

현 정권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려면 정권 운영에 대한 인식 전환과 당-청의 인적 재구축이 필요하다. 결국 사람의 문제로 귀착된다. 이명박-박희태 회동이 새로운 결단과 출발을 보여주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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