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인철]카터에게 배우는 ‘대통령 성공학’

  • 입력 2009년 4월 30일 02시 57분


미국인들에게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첫 번째로 꼽히는 인물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다. 1933년부터 1945년까지 12년간 재임하면서 대공황을 극복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전무후무한 4선의 대통령이기도 하다.

반면 39대 대통령인 지미 카터는 재임 기간보다는 퇴임 후에 더 평가를 받는 특이한 대통령이다. ‘조지아 땅콩장사’에서 주지사를 거쳐 ‘인권신장’을 기치로 내걸고 백악관에 입성한 카터는 대통령 취임 당시 지지율이 66%를 기록했으나 재임 성적은 형편없었다. 자질구레한 것에 너무 신경을 쓰고, 우유부단하고, 국정의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해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할리우드 영화배우 출신의 패기만만한 로널드 레이건 후보에게 막혀 재선에 실패한 뒤 백악관을 떠날 때는 지지율이 34%로 반토막이 났다.

그러나 56세의 젊은 나이에 퇴임한 카터의 인생은 180도 바뀌었다. 낙향한 뒤 평화유지, 질병퇴치, 희망만들기를 모토로 내걸고 1982년 애틀랜타에 ‘카터센터’를 설립하고 봉사에 전념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분쟁해결과 자원봉사 활동을 벌이고 있고, 특히 무주택자를 위한 ‘해비탯’ 운동에 적극 동참하면서 24분마다 집 한 채가 지어지는 세계적 운동으로 발전시켰다. 전임 대통령이 허름한 청바지에 망치질과 톱질을 하는 모습 그 자체가 하나의 감동으로 비쳐졌다. 1994년에는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나 북핵 문제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2001년에는 한국의 비무장지대 등에 사랑의 집짓기 운동을 벌였다. 2002년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지금은 미국인의 64%가 존경하는 지도자로 꼽고 있다. 우리는 왜 이런 대통령 한 명 없을까.

카터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여러 점에서 공통점이 많지만 평가는 정반대다. 진보적 성향에다 인권운동을 벌여왔고, 젊어서 퇴임한 뒤 낙향한 점이 그렇다. 노 전 대통령도 최고 지지율이 84%에 달했지만 퇴임 때는 27%까지 떨어졌다. 퇴임 열차를 타고 봉하마을로 내려와 밀짚모자를 쓰고, 자전거를 타고 동네 어귀를 노니는 모습은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간 모습으로 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600만 달러의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이 잇달아 제기되면서 ‘당신은 성공한 대통령입니다’라는 봉하마을의 현수막이 민망스럽게 됐다.

오늘 노 전 대통령이 검찰에 출두한다. 그토록 도덕성을 강조해온 대통령이 거액의 뇌물 수수 의혹을 검찰에서 해명해야 하는 처지가 됐으니 서울 가는 천리길이 착잡할 것이다. 그는 이미 홈페이지를 통해 5차례나 해명과 하소연을 했다. ‘도덕적 파산은 이미 어쩔 수 없다. 더 무슨 말을 할 수가 있겠느냐. 무슨 말을 하더라도 사람들의 분노와 비웃음을 살 것이다’는 말은 이미 모든 것을 버린 것처럼 들려 동정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검찰에 보낸 서면답변서에서 ‘아내가 한 일이라 나는 모른다’며 피의자의 권리 운운했다는 말을 들으면 앞서 한 말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된다. 조기숙 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노무현 측근들의 비리를 ‘생계형 부패’라며 국민의 마음에 염장을 질렀다. ‘입으로 망한’ 대통령이 행여나 알량한 법률 지식과 언변으로 또다시 검찰과 국민을 실망시키지 않기를 기대한다. 지금 국민이 듣고 싶은 것은 솔직한 고백과 자기반성이다.

이인철 사회부장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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