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안영식]골프와 거품

  • 입력 2009년 4월 29일 02시 59분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선 스크린 골프가 새로운 놀이문화로 자리 잡았다. 잘 치는 요령을 쓴 책이 나왔을 정도다. 왜 스크린 골프가 급속히 퍼졌을까. 가장 큰 매력은 요금이 싸다(3만 원 안팎)는 것이다. 30만 원(그린피, 캐디피, 식음료비 등 포함)을 웃도는 회원제 골프장 비용의 10분의 1이면 즐길 수 있다.

하지만 골프의 묘미는 넓은 초원에서 새(버디, 이글, 앨버트로스)를 사냥하는 짜릿함이다. 스크린 골프를 하다보면 ‘나도 실제 골프장에서 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그러나 그들 앞에는 높은 벽이 버티고 있다. 일단 골프장 부킹 자체가 어려운 데다 어지간한 월급쟁이는 한 달에 한 번 라운드하기에도 비용이 부담스럽다.

국내 골프장 내장객 수와 골프장 수는 2000년 이후 매년 10% 안팎으로 빠르게 증가해 왔다. 2008년 내장객 수는 2398만 명(회원제 1565만 명, 대중제 833만 명), 골프장 수는 311개(군골프장 제외).

그런데 우리 사회의 골프에 대한 통념은 한마디로 ‘부자들의 스포츠’다.

오랜 군사정권 시절 골프장은 청와대의 내인가 대상이었다. 검은돈과 골프장 인허가권이 거래됐다. 또 미국식 연회원제가 아닌 일본식 예탁금제를 채택한 우리나라 회원제 골프장 회원권은 호가가 10억 원대를 넘는 곳도 많다. 이런 이유로 골프는 대중 스포츠로 정착될 수 없었다. 골프는 원래 ‘고비용 스포츠’일까. 미국의 그린피 40∼50달러짜리 대중골프장을 보면 골프는 결코 사치가 아니다. 몇 년 전 미국에 갔었다. 자신의 차 안에서 골프화만 갈아 신고 라운드를 끝낸 뒤 샤워는 집에 가서 한다는 한 미국인을 만났을 때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그동안 ‘중과세 폭탄’의 주요 타깃이었던 회원제 골프장은 지난해 10월 조세특례법(2년간 한시적)의 적용을 받아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 회원제 골프장의 그린피가 평균 3만 원가량 인하됐다. 하지만 이로 인해 대중 골프장과 지방 회원제 골프장의 그린피 차액이 1만 원 미만으로 줄어들어 요즘 ‘밥그릇 싸움’이 한창이다.

회원제와 대중제를 막론하고 국내 골프장은 건설비와 관리비에서 ‘거품’을 빼야 한다.

5성급 호텔 수준의 클럽하우스는 꼭 필요한 것일까. 비슷한 규모의 A와 B골프장의 코스관리비가 50억 원과 30억 원으로 큰 차이가 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런 거품이 사라지지 않는 한 해외 골프관광 수요(2007년에 127만여 명이 2조3000억 원 지출 추산)를 국내로 흡수하는 것은 요원하다. 정부도 골프대중화 정책 취지에 부합되는 세제를 마련해야 한다. 종합부동산세로 무려 90억 원을 내는 서울 근교의 N골프장은 그린피 26만 원도 결코 비싼 것이 아니라며 항변하고 있다.

“비싸면 골프 안 치면 될 것 아니냐”는 태도와 인식으로 이미 연인원 2400만 명이 즐기는 스포츠인 골프 관련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것은 직무유기다. 정부는 국민의 스포츠레저 욕구가 저렴하게 해소될 수 있도록 노력할 의무가 있다. 골프도 그 한 부문이다.

과소비 관련 TV뉴스 자료화면에는 골프백이 가득 실린 카트 주변에 관광객이 모여 있는 공항로비가 단골로 등장한다. 박세리, 최경주가 기쁨을 안겨줬던 골프가 우리 사회에서 사치의 멍에를 벗는 날은 언제일까.

안영식 스포츠레저부 차장 ysa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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