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로 보내는 희망편지]피아니스트 꿈꾸는 박가을 군

  • 입력 2009년 4월 24일 03시 02분


“가난으로 한때 포기도 했지만

피아노를 떠날 수는 없었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충남 천안 북일고 2학년 박가을(사진)입니다. 고교 선배님이자 저의 역할 모델인 교수님께 편지를 보내려니 어떤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제가 피아노를 만난 건 일곱 살 때 어머니를 졸라 찾아간 동네의 작은 피아노 학원에서였습니다. 3학년 때부터는 학원 선생님의 권유로 천안시내에 있는 좀 더 큰 학원에 다녔죠. 졸릴 때도 피아노 의자에 엎드려 새우잠을 청할 정도로 피아노가 마냥 좋았습니다.

물론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피아노를 계속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어요. 아버지는 뇌종양에 걸려 7년여간의 투병생활 끝에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되는 해에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16년째 노점에서 호떡 장사를 하고 계시거든요. 어린 마음에도 어머니를 더 힘들게 할 수는 없어 6학년 때 굳게 결심하고 피아노를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피아노를 떠나 있던 중학교 3년 동안, 건반 위를 달리고픈 마음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피아노를 치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했습니다. 결국 고교에 입학해 어머니께 솔직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은 피아노밖에 없다고 말이죠. 그리고 피아노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피아노 앞에 다시 앉은 요즘 세상을 다 얻은 듯이 기쁘지만 불안한 마음도 큽니다. 좋은 교육을 받으며 피아노를 쳐온 서울 아이들에 비해 너무 뒤처진 건 아닌지 조마조마해서요.

일단 5월 천안 지역에서의 콩쿠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이뤄나가며 제 꿈에 다가가고 싶어요. 그래서 나중엔 저처럼 어려운 아이들의 ‘꿈’을 지켜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교수님, 아니 선배님. 제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예술종합학교 강충모 교수▼

“목표 정해 최선 다하면 ‘현실’이 된단다”

“건반에 피 묻을때까지 치고 또 쳤지”

“와, 교복이 정말 많이 변했구나.”

19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한국예술종합학교. 충남 천안 북일고 2학년 박가을 군(17)이 연구실에 들어서자 고교 선배이기도 한 강충모 교수(사진)는 학창 시절의 추억을 얘기하며 반갑게 맞이했다. 대화의 주제는 곧 피아노로 넘어갔다.

“너도 피아노를 쉬었다고? 그래, 얼마나 쉬었니? 나도 자신이 없어서 2년간 건반을 떠난 적이 있었지. 그런데 너처럼 피아노를 정말로 떠날 수는 없었어. 우여곡절 끝에 다시 피아노 앞에 앉게 됐고 건반에 피가 묻을 때까지 연습을 했지. 치고 또 치고, 그러면 되는 거야. 가을이 너도 그렇게 할 수 있겠지?”

쇼팽 콩쿠르 등 유명 콩쿠르 심사위원을 맡기도 한 강 교수도 청소년 시절에 박 군과 마찬가지로 건반을 잠시 떠났다. 천안에서 서울 예원중학교로 유학을 왔을 때 주변의 친구들이 너무나 뛰어나게만 느껴졌다. 게다가 유난히 작은 손이 늘 마음에 걸렸다.

“손이 작은 게 너무 속상해서 일부러 상처를 내보기도 했어. 엄지와 검지 사이를 째볼까 병원에도 가봤지.”

결국 피아노를 접기로 결심한 강 교수는 중학교 3학년 때 일반 중학교로 전학해 인문계 고교에 진학했다. 고 1학년 때까지 2년 동안 피아노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피아노를 향한 열망은 멈출 수가 없었다. 천안으로 내려가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다. 피나는 연습이 시작됐다.

“서울에서 만난 친구들이 자꾸만 떠올랐어. 원래 잘 치던 아이들이었는데 내가 피아노를 쉬는 동안 그 친구들은 얼마나 성장했을까. 그래서 더더욱 열심히 연습을 했지.”

누구보다 박 군의 불안함을 이해하는 강 교수는 ‘연습’으로 안 될 것은 없다며 용기를 북돋았다.

“나도 손이 작아서 남들 3시간 연습할 곡을 언제나 5시간은 연습해야 했어. 정말로 연습밖에 답이 없어. 그래도 가을이 손은 피아노 치기에 딱 좋은 손이야. 힘을 내.”

박 군이 연구실의 피아노 앞에 앉았다. 요즘 연습 중이라는 베토벤 소나타를 치기 시작했다. 강 교수는 격려와 함께 따끔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음악에 감정이 들어가야 돼. 이 베토벤 소나타에도 기승전결이 있단다. 천천히 이야기가 시작되고, 사건이 발생하고, 고조되고, 마무리되는 그런 하나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표현해내야지. 앞으로는 노래를 듣고 연극을 보면서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연구해보는 것도 필요해.”

강 교수의 알기 쉬운 설명에 건반을 두드리던 박 군의 손가락에도 점점 감정이 들어갔다. 피아노 소리에도 서서히 ‘색(色)’이 입혀졌다. 강 교수가 편해졌는지 박 군은 가슴 한쪽에 묻어둔 속 얘기를 살짝 털어놨다.

“중간에 3년을 쉰 것도 부담스럽고요. 경제적 형편상 서울에서 레슨을 받을 수가 없어 이것도 좀 불안합니다.”

박 군은 ‘피아노’를 입에 달고 사는 아들을 위해 호떡을 팔아 힘들게 모은 돈으로 200여만 원이나 하는 피아노를 사준 어머니를 실망시키지는 않을까 하는 조바심도 내비쳤다.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아 미국 유학 시절에는 샌드위치가게 점원 등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 했고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콩쿠르에 나가기도 했던 강 교수. 그는 박 군의 사연을 듣고 자신만의 비밀을 공개했다.

“난 사실 아내도 모르게 쓰는 일기장이 있어. 단순히 오늘 한 일을 쓰는 게 아니라 5년 뒤의 내 목표를 구체적으로 그린 일기장이지. 정말로 그 목표를 생각하며 달리다 보니 정말로 현실이 되었지. 지금의 상황이 불안하고 초조하겠지만 그럴 때마다 너의 구체적인 목표를 그려보며 마음을 다잡으렴.”

레슨을 받기 위해 학생들이 강 교수 연구실을 찾아왔다. 헤어질 시간. 강 교수는 “고민을 털어놓고 싶을 때면 편하게 연락하라”며 “다음엔 진짜 피아니스트가 돼서 찾아오라”고 박 군의 어깨를 두드렸다.

“네, 꼭 그럴게요.”

수줍음 많은 박 군의 얼굴에는 어느덧 눈부신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