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익모]연구실, 시설보다 안전 먼저

  • 입력 2009년 4월 22일 02시 57분


대학을 비롯한 연구기관의 활동은 우리나라의 눈부신 경제발전에 발맞추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수출액이 1994년 1000억 달러에 조금 미치지 못하다가 2008년 4000억 달러 정도로 약 4배 증가했는데 이 기간에 연구개발 투자액은 10조 원 정도에서 40조 원에 조금 모자라는 정도로 비슷하게 증가해 경제발전에서 연구개발의 중요성이 확연하게 나타난다. 연구원 및 대학원생 수도 3배 정도 증가해 연구 활동의 양적 팽창은 확연하다. 그러나 연구실의 안전을 보장하려는 노력은 지난 20∼30년간 전무하다고 할 정도였다.

압축된 성장을 위한 성과 위주의 전략에 안전문제가 자리 잡을 수 없었다. 안전 경시 내지 무시의 결과는 치명적이어서 몇 번의 연구실 사고로 아직 채 피지 못한 전도양양한 젊은 과학자가 꿈을 접어야 했다. 사회의 관심도 일시적이다. 호수에 던진 돌에 의한 파문이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듯 사고가 날 때 반짝하다가 몇 달이 지나면 젊은 과학자가 마치 세상에 없었던 듯이 무심해지기를 반복해 왔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자 ‘연구실 안전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이 2006년 시행됐다. 하지만 안전 인프라는 여전히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시설의 미비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사회 전반에 만연한 안전의식의 결여 및 무시였다. 대학 현장에서부터 안전을 학습하고 생활화하는 장기적 계획의 실행이 최선이라고 믿는다.

이런 인식에 동의한 교육과학기술부의 후원으로 2년째 전국을 순회하는 안전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연구실 안전을 확립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현장을 찾아 기본적 정보를 전달하고 연구원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시작됐다.

연구실의 안전부재와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 방향과 위급 상황에서의 응급처치법을 가르치는 내용은 연구실 종사자로 하여금 연구실 안전 현황의 문제점을 공유하게 하고, 개선에 필요한 최소한의 전문지식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현장에서 연구실 종사자들이 전하는 한마디 한마디에 감동과 보람이 더해간다. “좋은 교육 감사합니다.” “연구책임자도 교육시켜 주세요.” “안전에 대하여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어요.” “안전 확보 문제가 작은 점을 개선하는 일부터 시작할 수 있음을 몰랐습니다.”

대학의 안전관리자들 역시 기쁜 소식을 전한다. 처음에는 귀찮다고 하던 교수와 대학원생들이 안전문제에 관심을 가지니 일하기가 쉬워졌다며 고마워한다. 또 연구자들의 의식이 짧은 시간에 상당히 많이 개선되고 있다고 한다. 대립적이기 쉬운 행정담당 부서와 연구현장 실무자와의 관계도 함께 개선되는 것이다.

이는 조그만 시작의 첫걸음에 불과하다. 연구실 안전교육을 시간낭비로 생각하는 일부 연구 책임자와 행정 담당 책임자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또 연구 종사자 스스로 이를 시간 낭비가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데 필수적인 교육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효과적인 교육 과정의 확립, 효율적 교육을 위한 강사의 육성, 최신 내용을 담은 교재의 확보 및 배포도 중요하다.

넘어야 될 고비가 하나둘이 아니지만 세계적 수준의 안전문화 확립은 이제 절반 이상의 고개를 넘었음이 확실해 보인다. 실패한 사람이 성공의 달콤함을 알기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한 안전교육에 희망이 넘친다. 당장에, 눈앞에 성과가 나타나기 어렵지만 꾸준히 한걸음 한걸음 내디디면 의미있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달부터 횟수를 늘려 실시할 순회 안전교육이 어떠한 성과를 보일지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이익모 인하대 화학과 교수·대학환경안전협의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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