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최승부]비정규직 해법은 ‘실업 없는 노동이동’

  • 입력 2009년 4월 9일 03시 01분


정부가 기간제 근로계약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파견기간을 최장 2년에서 4년으로 하는 기간제법과 근로자파견법 개정안, 또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특별조치법 제정안을 지난달 23일 입법예고했다. 법 체계상의 허술함과 법제의 안정적 정착을 저해하는 내용 때문에 노동의 유연화나 근로자 보호라는 목적을 기대하기 어렵고 실질적으로 현행법에 비해 달라진 점이 없다.

첫째, 기간제 근로계약의 계약기간을 초과하여 사용하는 경우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본다’는 획일적 규정을 삭제해야 한다. 그래야 사용자는 기간제법에 따라 사용기간 범위 안에서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하고 이후에는 필요에 따라 기간제법이 아닌 근로기준법에 따라 새로 계약기간을 정하여 근로관계를 맺거나 정규직으로 고용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 고용의 기회와 가능성이 확대되고 고용 안정을 기할 수 있는데 개정안은 이 점을 간과한 채 기간제법상의 사용기간을 초과하면 무조건 정규직 근로계약이 체결됐다고 본다는 규정을 두니 사용자로서는 기간 만료시기가 임박하면 근로관계를 서둘러 단절할 것이 뻔하다.

둘째, 비정규직 관련법의 개정과 별도로 1년을 초과하는 기간을 정해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에 1년을 경과한 후에는 언제든지 해지할 수 있다는 규정을 근로기준법에 신설해야 한다. 당초 기간제법을 제정하면서 근로기준법상 근로계약기간은 일정한 예외를 제외하고 1년을 초과할 수 없도록 제한하던 규정을 삭제한 것은 장기 근로계약에 따른 인신 구속으로부터 계약 해지 즉 퇴직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라는 점을 잊은 입법의 오류다. 이런 규정을 두지 않으면 기간제 근로계약의 경우든, 또는 그 후에 새로운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든 계약기간의 계약 해지는 민법상 고용계약에 관한 규정에 따라야 하므로 퇴직하려는 근로자는 부득이한 사유를 밝히거나 손해를 배상하거나 해지 통고 후 일정기간 경과를 기다려야 하는 제약을 받는다.

셋째, 비정규직 근로자의 차별적 처우 시정신청의 제척(除斥)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하려는 내용의 타당성을 수긍할 수 없다. 근로자가 차별적 처우에 관한 정보를 얻기 어려워 시정신청을 할지 의사 결정을 하는 데 3개월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지만 근로조건 및 근로자 권익보호 사항에 대해서는 근로감독이나 무료 민원행정 서비스가 널리 갖추어져 있다. 제척기간을 늘리는 방안은 오히려 분쟁요인의 잠재기간을 장기화할 뿐 권리구제에도 실익이 없어 형식 논리적 발상일 뿐이다. 노동관계법상 다른 권리구제의 제척기간도 모두 3개월이다.

넷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중소기업에 사회보험의 사업주 부담 보험료 절반을 한시적으로 감면하는 방안은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사업주가 비정규직을 사용하거나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문제는 경영상 인력의 수요와 근로자의 직무능력에 따라 결정하지 사회보험료 부담에 영향받지 않는다. 개정안과 같은 접근은 노동시장 기능이나 사회보험의 원리에 반할 뿐 아니라 사업주의 도덕적 해이만을 조장할 뿐이다. 오히려 보험 가입을 기피하는 비정규직 근로자와 사업주를 색출하여 가입을 독려하는 행정지도와 감독을 강화하고 비정규직 근로자의 보험료 부담률을 낮추는 조치가 필요하다.

노동의 유연화와 고용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비정규직 관련 법제와 정책의 요체는 ‘실업 없는 노동이동’이 구현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정부, 지자체, 학교, 노동계, 경영계, 기타 전문분야 간에 광범하고도 긴밀한 고용 서비스망을 가동하고 비정규직 근로자의 직장 또는 직종 변동에 따른 사회보험 가입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며 직업능력 향상을 위한 노사의 공동노력과 실효성 있는 지원프로그램을 운용하는 기틀을 확립하는 방안이 정도이다.

최승부 법무법인 신우 고문 전 노동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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