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인철]감시견과 애완견

  • 입력 2009년 4월 6일 02시 53분


미국에선 대통령의 애완동물들은 대통령 못지않은 명사 대접과 인기를 누린다. 백악관 홈페이지에 동물별 사이트를 따로 둘 정도고 그중에서도 애완견인 ‘퍼스트 도그’는 언론의 단골 뉴스거리다.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은 무려 36마리의 개를 키운 것으로 유명하다. 시어도어 루스벨트(26대)는 개, 새는 물론 뱀까지 가히 ‘동물원 수준’의 애완동물을 키웠다. 빌 클린턴 대통령 가족은 애견 ‘버디’가 교통사고로 죽자 애도 성명을 내고 버디가 어린이들에게서 받은 편지를 묶어 책으로 내기도 했다.

대통령들은 고독한 권부 생활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반려동물을 찾았다. 그러나 부드럽고 서민적 친밀감을 주는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애완견을 활용하기도 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워싱턴에서 진정한 친구를 원한다면 개를 키워라’라는 말로 권모술수와 감시가 번득이는 백악관 생활을 비유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대통령들도 애완견을 키웠지만 문화 차이인지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은 사정기관을 관장하면서 대통령 친인척을 관리하고 감시하는 최고의 워치도그(watch dog·감시견)다. 총무비서관실은 청와대의 안살림을 도맡아 하는 자리로 역대 대통령들은 측근 중에서도 가장 믿는 심복을 앉혔다.

‘박연차 리스트’가 하나둘 드러나면서 대통령 참모와 측근들의 비리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산상고 2년 후배인 최도술 씨를 총무비서관에 앉혔지만 대선 직후 SK 비자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정부 출범 8개월 만에 구속됐다. 여택수 대통령제1부속실행정관과 안희정 씨 등도 줄줄이 쇠고랑을 찼다. 노 전 대통령은 “최도술 사건 보도를 보고 눈앞이 캄캄했다. 무슨 낯으로 바른 소리를 할 수 있을지 참담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최 씨의 후임에 자신과 동향이고 사법시험을 함께 공부한 정상문 씨를 임명했다. ‘저승사자’로 불릴 정도로 엄격했고 퇴임 때까지 대통령 곁을 지켰다. 그런 그도 재임 시절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2억여 원을 받은 혐의가 드러나 현재 검찰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 친인척에게 500만 달러를 건네는 과정에서 모종의 역할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받고 있다. 대통령의 사시 동기인 검찰 출신의 박정규 전 민정수석도 1억 원의 상품권을 챙겼다가 구속되는 신세가 됐다.

정권이 바뀌어도 비리는 끊이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의 추부길 전 홍보기획비서관은 박 회장에게서 2억여 원을 받았다. 그는 지난해 9월 노건평 씨의 부탁을 받고 당시 친이(親李) 핵심 의원에게 박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 무마를 부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의원은 “민정수석이나 검찰에 알리지는 않았다”고 자인했다. 이종찬 전 민정수석은 박 회장과 거액의 돈 거래를 했다.

대통령 주변을 감시하고 비리를 수사해야 할 검찰 경찰 국세청 국정원 인사들의 이름도 박연차 리스트에 오르내린다. 이것은 감시견이 제때 짖지 않고, 주인님의 무릎에서 꼬리를 흔드는 랩도그(lap dog·애완견) 노릇이나 하면서 이권이나 챙기는 데 열심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정부에서도 대통령과 친하다는 어느 기업인 같은 실세라는 사람들의 4년 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죽은 권력’에만 강한 ‘표적사정’이란 시비가 되풀이되지 않게 하려면 감시견들이 제때 짖어야 한다.

이인철 사회부장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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