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500만 달러 주인’의 잠 못 이루는 밤

  • 입력 2009년 4월 5일 20시 45분


민주당 경선이 한창이던 2002년 무렵 기업인 K 씨에게 노무현 경선후보 측 S 특보가 찾아왔다. K 씨는 7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S 특보는 “노 후보가 설립했던 장수천의 연대 보증인이 소유한 땅을 사 달라”고 부탁했다. S 특보는 “15억 원쯤 하는 땅인데 선거자금을 도와주는 뜻에서 23억 원에 사 달라”고 말했다. K 씨는 직원들을 현장에 보내 실사를 했다. 직원들은 “7억∼8억 원이면 넉넉하게 쳐주는 것”이라고 보고했다.

K 씨는 S 특보에게 “7억 원짜리 땅을 23억 원에 사주었다가는 나중에 나와 노 후보에게 문제가 된다”며 제의를 거절했다. 노 후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예상을 깨고 이인제 씨를 누르고 대통령 후보가 됐고, 본선에서도 예상을 뒤엎고 대통령이 됐다. 땅 거래를 성사시키지 못한 K 씨와 S 특보는 이후 공교롭게도 잘 풀리지 않았다. S 특보는 노무현 캠프에서 물을 먹다 결국 노 전 대통령과 등졌다. K 씨는 구속돼 한참 옥고를 치렀다.

노 후보 진영이 K 씨에게 시도했던 땅 매매는 합법과 불법의 가르마를 타기가 매우 힘든 거래에 해당한다. 편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중에 이 땅은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에게 19억 원에 넘어갔다. 검찰은 강 회장이 이 땅을 가장매입해 노 대통령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지원한 혐의로 기소했지만 법원은 “다소 이례적이고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당사자 간 호의적 거래임을 감안하면 유죄로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합법과 편법의 경계선 줄타기

K 씨는 “세무 변호사를 해본 노 후보는 그런 거래에 달통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1988년 노 전 대통령이 부산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을 때 형 노건평 씨가 내놓은 김해 땅을 사들였다. 2002년 16대 대선 때 노건평 씨가 내놓은 거제도 땅도 박 회장이 매입했다.

봉하마을에 내려간 초기에 노 전 대통령은 관광객들 앞에서 하루 두세 차례 연설을 했다. 그러던 노 전 대통령이 요즘 입을 닫았다. 인터넷에 글도 올리지 않는다. 박 회장이 해외 계좌를 통해 조카사위에게 보낸 500만 달러가 노 전 대통령에게 전달하려던 돈이라는 보도가 나오는데도 ‘노무언(無言)’이 됐다. ‘박 회장이 홍콩법인 계좌에서 500만 달러를 노 전 대통령 측에 보냈다’는 내용의 기사는 동아일보의 특종(3월 19, 20일)이다.

입만 열면 주류 신문을 공격하던 노 전 대통령이 요즘 형제에 대해 좋지 않은 보도가 넘쳐나는데도 침묵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MB 정권의 주구(走狗)인 검찰과 ‘서울에 큰 빌딩 가진 신문사’들이 합작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라고 일갈하면 한 가닥 미련을 간직한 사람들에게 다소 위안이 될 것이다.

그런데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친사위를 놔두고 조카사위에게 배달을 맡긴 이유는 무엇일까. 뇌물 주는 데 이골 난 사람이 조카사위를 통해 거금을 보낼 때는 최종 수령인(受領人)에게 어떤 식으로든 통보했을 것이라고 검찰은 보고 있다. 형사소송법상 500만 달러의 최종 수령인을 입증(立證)할 책임은 검찰에 있다. 법률전문가인 노 전 대통령과 검찰의 대결은 양쪽에 모두 힘든 싸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이 500만 달러의 송금을 안 시기가 언제냐가 문제일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500만 달러 송금’을 알고 있었다면 포괄적 뇌물죄에 해당하고, 우리 국민도 쓰디쓴 배신감을 맛봐야 할 것이다.

노 대통령이 퇴임 후에야 송금 사실을 알고서 침묵했다면 법적 처벌은 피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집권 명분으로 과시하던 도덕적 기반은 송두리째 붕괴할 것이다. 무능한 좌파가 깨끗하지도 못했단 말인가. 조카사위가 투자 명목으로 받았더라도 강 회장이 ‘부정한 비자금’이라며 거절했던 것과 똑같은 금액이 페이퍼 컴퍼니를 거쳐 조세피난처의 창투사로 들어간 것도 의문이다.

철저 수사로 후대의 경계 삼아야

전직 대통령 9명 중에서 2명이 뇌물죄로 교도소에 다녀왔는데 또 1명이 교도소에 가게 되면 대한민국의 국제적 체면이 말이 아니다. 그렇지만 나라 체면이 다소 구겨지더라도 후대의 집권세력이 경계를 삼을 수 있도록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 검찰은 ‘살아있는 권력’에 약하고 ‘죽은 권력’에 강해 ‘하이에나’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이에나는 4년 뒤에 다시 MB 정권의 죽은 고기를 먹기 위해 달려들 것이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