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억대 횡령해도 징계로 끝나는 공직사회

  • 입력 2009년 3월 26일 02시 58분


농협은 작년에 2억7100만 원을 횡령해 주식투자로 탕진한 4급 직원을 적발하고도 형사고발을 하지 않았다. 여론 악화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사법기관에 고발하지 않고 자체 징계위원회에서 징계면직 처리하는 데 그쳤다. ‘임직원의 범죄에 대해 고발을 원칙으로 한다’는 법규를 무시한 제 식구 봐주기다.

농협은 지난 3년간 3000만 원 이상의 거액 공금 횡령 사건 19건 중 10건을 수사기관에 고발하지 않았다. 수협도 작년에 1억8400만 원의 거액을 횡령한 직원을 수사기관 고발 없이 면직 처리했다. 이런 판이니 농협 수협에 비리가 그치지 않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 정도 횡령 액수는 검찰에 고발해 재판에 회부될 경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이 적용돼 최근 판결 추세에 비추어 실형이 선고된다. 같은 공금을 횡령했어도 어떤 이는 운이 좋아 징계 받고 끝나고, 어떤 이는 징역을 사는 것은 법적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지난 3년 동안 3000만 원 이상 거액을 횡령한 113명의 공직자 가운데 35.4%인 40명이 형사고발도 당하지 않고 의원면직 등 자체 징계를 받는 데 그쳤다. 거액을 횡령하고도 엄중한 처벌을 받지 않으니 안 걸리면 ‘남는 장사’고, 걸리면 징계 받고 사직하면 된다. 솜방망이 처벌이 공금에 손대는 공무원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국무총리실 등 상급기관은 ‘공직자의 범죄사실을 발견하면 행정기관장은 형사고발하라’는 훈령만 내려보내고 제대로 지켜지는지 확인도 하지 않았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민생안정이 시급해지면서 정부가 전달해야 할 보조금과 지원금 규모가 여느 때보다 크다. 이전에도 장애인과 생활보호대상자에게 지급되는 보조금을 가로채는 파렴치한 일들이 벌어졌다. 복지급여를 수령자들에게 제때 정확하게 전달해야 할 공무원들이 중간에서 가로채면 어느 구석에서는 춥고 굶주린 취약계층이 더 고통 받는다.

단 한 번이라도 공금에 손을 댔다가는 패가망신한다는 인식이 공직사회에 뿌리내려야 한다. 경제범죄에는 경제논리가 성립된다. 범죄로부터 얻을 수 있는 기대이득이 기대비용보다 적어야 공직자들의 공금횡령을 없앨 수 있다. 제 식구라고 해서 감싼 간부들도 철저히 조사해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 공직사회 풍토를 쇄신해야만 선진사회로의 도약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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