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홍규]기업 혁신이 희망이다

  • 입력 2009년 3월 17일 02시 57분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은 세계 경제의 판도라 상자를 여는 일이었다. 세계 경제는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온갖 재앙과 질병이 덮친 위기상황으로 빠져들었다. 탐욕과 자만의 시대를 지나 파국과 비관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러나 판도라 상자에는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 상자에서는 이런 소리가 들린다. “나를 내보내 주세요. 나는 희망입니다.” 그렇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이 희망을 꺼내는 일이다.

구조조정 미적거릴 시간없어

한 나라의 국부창출 주체는 기업 정부 가계이다. 핵심은 기업이다. 기업이 잘해야 결국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 특히 지금 우리로서는 대기업이 잘해주어야 한다. 과연 우리 대기업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일단 대답은 긍정적이다. 지금 보니 1997년 위기는 대기업에 ‘위장된 축복’이었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그때 맞은 매 덕에 지금은 10대 그룹 상장기업만 하더라도 53조 원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게 됐다. 지난 수년간 4∼5%대의 성장을 그나마 유지한 것도 수출 대기업이 가진 대량생산 체제와 엔지니어링 기술 덕분이었다.

반도체 가전 조선 자동차에서 보듯이 세계 산업에는 우리의 빠른 머리와 날렵한 손재주, 고도의 집중력과 속도감이 만들어내는 역량이 먹힐 구석이 아직 남아 있다. 엔지니어링 기술은 또한 품질과 가격을 결정하는 기술이다. 그러기에 싸면서 품질 좋은 제품이 필요한 불황기에 딱 제격인 기술이다. 대표산업인 반도체 분야에서도 그렇다. 경쟁기업은 60나노 기술에 머물러 있는데,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50나노 기술을 갖고 효율에서 앞서고 있다. 수요 급감으로 세계 5위 독일기업 키몬다가 파산신청을 하고 대만 기업이 휘청거려도, 삼성과 하이닉스의 미래는 낙관적이다. 우리에게는 지금 이런 대기업의 희망 리더십이 필요하다. 즉 기술 혁신, 비즈니스모델 혁신, 글로벌 역량 혁신의 리더십이다.

문제는 중소기업이다. 세계 유수기업의 글로벌 네트워크의 일원이 될 정도로 유능한 중소기업이 많아졌지만 아직 많은 중소기업이 만성적 보호와 지원의 그늘 속에 있다. 지난 몇 년간의 내수경기 침체, 무분별한 은행 간 대출경쟁으로 한계기업의 금융부실은 급증하고 있다. 중소기업 기반이 붕괴되면 경제에는 희망이 없는 법이다. 중소기업을 살리려면 대기업의 상생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위기를 이용해 가격을 후려치고 대금을 미뤄서는 희망을 찾기 어렵다.

정부 또한 제 할일을 해야 한다. 이 위기가 단기적 위기라면 미적미적 넘길 수 있지만 지금은 L자형 장기불황까지 운위되는 형국이다. ‘죄수의 게임’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구조조정을 미루면 결국 건전 기업마저 좀비족으로 만들게 된다. 구조조정을 미루면 틈새시장에 혁신적 기업이 새롭게 나타날 수 없다.

대기업-중기 양극화 경계해야

정부가 경계해야 할 사실은 이 위기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가 더 심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경쟁의 첨예화로 유능기업보다 무능기업이 많아지고, 환율의 보조효과로 수출기업과 내수기업의 간격이 더 벌어질 것이다. 이 악순환을 벗어나려면 우선 환율이 안정돼야 하지만 우리 자신의 패러다임 전환도 필요하다. 의사보다 기술인이 존경받고, 안주보다 도전을 선택하고, 보호보다 경쟁을 선호하는 사회라야 중소기업의 미래 또한 밝다.

지금 우리는 역사에 기록될 변곡점을 넘고 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작금의 세계 경제이다. 그러나 궁즉통(窮則通)이라 하였다. 궁하면 변하기 마련이고, 변하면 통하는 법이다. 더구나 우리만큼 역동적이고 변신능력이 탁월한 국민도 드물다. 판도라 상자의 희망을 꺼내야 하는 것은 바로 그 변신을 위해서이다.

이홍규 KAIST IT경영학과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