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선수 마음 어루만져주니 코트에서 펄펄”

  • 입력 2009년 3월 14일 02시 58분


전창진 원주 동부 감독은 DBR와의 인터뷰에서 선수들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지도자가 진정으로 훌륭한 리더라고 강조했다. 최훈석 기자
전창진 원주 동부 감독은 DBR와의 인터뷰에서 선수들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지도자가 진정으로 훌륭한 리더라고 강조했다. 최훈석 기자
프로농구에서 경영을 본다

원주 동부 전창진 감독

《스포츠와 경영은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다. 탁월한 리더십, 효율적인 팀워크, 치밀한 전략이 어우러져야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 미국에서는 스포츠에서 경영 화두를 찾는 작업이 일반화돼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는 스타 선수 출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2002년 감독 취임 후 3차례 우승을 차지하며 농구계를 놀라게 한 원주 동부 전창진 감독(46)을 만나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지도자상과 선수 관리법을 들었다. 전 감독의 인터뷰 전문은 DBR 29호(2009년 3월 15일자)에 실린다.》

말단 프런트서 감독 올라… 6년간 3차례 우승

선수들 술자리-잠자리 챙겨주며 고민상담도

코치에겐 일단 믿고 맡긴후 철저히 권한분배

발목 부상으로 프로 1년 만에 농구를 접은 선수가 있다. 구단 프런트(기록, 선수관리, 스카우트, 2군 육성, 홍보, 마케팅 등을 담당하는 구단 직원들을 총칭하는 용어)로 밑바닥 생활을 시작했다. 10년간의 프런트 생활 끝에 지도자로 변신했지만 주위의 평가는 차가웠다. 하지만 그 어떤 스타 선수 출신 감독보다 화려한 농구 인생을 열어가고 있다. 원주 동부 전창진 감독의 이야기다.

지도자로서 전 감독의 성공 시대를 예견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처음 감독 지휘봉을 잡은 2002∼2003시즌에 보란 듯이 우승컵을 거머쥐었을 때도 “김주성 같은 특A급 선수를 두고 누가 우승 못하나”란 폄훼가 이어졌다. 하지만 그는 이후 6년 동안 2번의 우승컵과 1번의 준우승컵을 더 차지했다. 올 시즌에도 정규리그 1위가 유력하다.

전 감독은 오랜 프런트 생활을 통해 선수는 물론 미디어, 코치, 트레이너, 구단 직원과 운전사에 이르기까지 농구단 안팎으로 폭넓은 인간관계를 맺었다. 주방에서 일하는 아줌마에게 화장품을 선물하고, 구단 운전사를 깍듯이 ‘형님’으로 모시며, 한 줄짜리 기사를 위해 밤늦게 언론사에 간식을 들고 찾아가는 그의 행동 자체가 한 권의 인맥관리 교본이다.

―삼성 프런트 시절부터 남다른 선수 관리를 하셨다죠.

“저는 체질적으로 술을 못하지만 선수들과 함께하는 술자리를 자주 가지며 고민상담을 해줬습니다. 밤에는 어린 선수들의 잠자리를 챙겨주고, 고참 선수 방에는 술 마시러 나가지 말라고 술과 안주 접시를 넣어 줬어요. 술도 선수들의 특성에 따라 소주와 맥주를 구분해서 줬습니다. 심지어 여자 문제로 고민하는 선수 때문에 문서 위조 비슷한 일까지 해봤습니다. 시시각각 선수들의 고민을 파악하고 어떤 일이 있는지 점검하기 위해 노력했죠.”

―지금의 전 감독을 만든 결정적 계기는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감독 첫해 정규리그 3위를 한 후 챔피언 결정전에서 우승했습니다. 당시 김주성, 신기성, 양경민이라는 세 스타 선수가 있었고, KCC 허재 감독이 식스맨으로 있었습니다. 이들 4명에게 시선이 집중됐고, 저도 이 선수들을 가장 믿었습니다. 정규리그 때 제가 주전들을 너무 혹사시킨다는 이야기가 많았어요. 제가 보기엔 주전 선수와 나머지 선수들의 기량 차가 너무 커 나머지 선수들을 기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감독으로서 제 경험 부족이었죠. 실력 차가 많다고만 생각하고 후보 선수의 잠재력을 끄집어낼 생각을 못했으니까요.

그런데 시즌 중 별로 눈에 띄지도 않던 윤제한, 지형근, 신종석 등 후보 선수들이 챔피언 결정전에서 너무 잘해 주는 겁니다. 결국 식스맨들의 활약 덕분에 첫해 우승을 차지했어요. 그러고 나니 저의 선수 활용 전략이 얼마나 단조로웠는지, 선수들의 잠재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겠더군요.”

―프런트 시절 ‘감독이 되면 이런 행동을 반면교사로 삼겠다’고 느꼈던 점은….

“감독이 선수를 심하게 야단친 후 제대로 어루만져 주지 않을 때가 가장 안타까웠습니다. 당연히 혼이 나야 하는 선수도 있지만 가끔은 억울하게 혼이 나는 선수들이 있습니다. 이런 선수들을 제대로 어루만져 주지 않으면 선수들이 나쁜 마음을 먹습니다. 선수들에게 힘든 훈련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시키는 것도 필요합니다. ‘다음 주부터 훈련이니까 준비해!’ 이러는 감독님들이 계세요. 저는 여름 훈련에 돌입하기 최소 4주 전부터 훈련에 대해 여러 번 설명합니다. ‘8주 스케줄로 이뤄질 것이다. 힘들겠지만 이 훈련 못하면 결코 너희들을 경기에 투입시키지 않는다’고요.”

―좋은 지도자란 어떤 사람입니까.

“선수뿐만 아니라 모든 구단 식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 훌륭한 리더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시즌 초기에도 기대했던 모 선수가 너무 이상해 독대를 했더니 역시 여자 문제가 있더군요. 선수단에서도 아무도 모르던 상황이라서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라’고 안심시켰죠. 그 문제를 해결해 줬더니 역시 펄펄 날더군요.

코치들을 대할 때도 일단 믿고 맡긴 후 철저히 권한을 분배해야 합니다. 저는 체력 훈련과 체육관 훈련은 철저히 담당 코치들에게 맡기고 전술 훈련만 제가 합니다. 감독이 스트레칭부터 일일이 간섭하면 좋은 훈련이 될 수 없습니다. 코치들도 주인의식이 없어져 연구를 게을리 합니다. 물론 저도 코치들이 하는 게 100% 성에 안 찰 때도 있습니다. 체력 훈련이 부족하다 싶으면 훈련이 다 끝난 다음 선수 앞이 아니라 코치와 단둘이 있을 때 살짝 말합니다. ‘이건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훈련 좀 더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요. 이때 ‘이건 내가 잘 몰라서…’라는 표현이 핵심입니다. 제가 그 상황에서 ‘훈련이 왜 이 모양이야, 똑바로 못해’ 이러면 코치가 저를 믿고 따라오겠습니까.”

○ 전창진 감독은

용산고, 고려대를 졸업하고 삼성전자 선수로 프로에 입단했으나 부상으로 곧 선수 생활을 접었다. 2002년 TG 삼보(현 원주 동부) 감독으로 부임했다. 감독 첫해 챔피언전 우승을 차지했고 이후 2번의 우승과 1번의 준우승을 더 이뤄내며 농구 명장으로 자리 잡았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동아일보 이승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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