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단순한 원칙

  • 입력 2009년 3월 5일 20시 04분


최근 접한 가장 속 시원한 뉴스가 다이어트에 관한 과학적 연구결과다. 먹고살기도 힘든 판에 살 빼기가 웬 말이냐 할 수도 있지만 비만 때문에 고민해본 사람은 안다. 방법은 오만 가지여도 실효를 보기는 너무나 어렵다는 걸. 더구나 정치건 경제건 앞이 안 보이는 세상에 명확한 답이 하나 밝혀졌다는 건 과장해 말한다면 거의 복음이었다.

“살 빼려면 덜 먹고 운동하라”

지난달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이 전한 연구결과는 허무할 만큼 단순하다. 저(低)탄수화물 고(高)단백의 앳킨스 다이어트든, 저지방식이든, 평소 먹는 식이든 상관없다. 무조건 덜 먹고 운동하는 수밖에 없다는 거다. 하버드대 공중보건연구팀이 811명의 과체중 성인을 식단에 따라 네 그룹으로 나눠 2년을 지켜본 결과다. 평소보다 750칼로리씩 덜 먹고 일주일에 90분은 운동하도록 했더니, 어느 쪽이 더 낫다 하기 힘들 만큼 네 그룹 모두 비슷하게 몸무게와 허리둘레가 줄었다.

물론 꼭 살을 빼야 하느냐고 이의를 제기할 순 있다. 왜 취업이나 결혼, 평판을 위해 심신을 괴롭혀야 하느냐는 사회적 비판도 없지 않다. 끊임없이 다이어트식품과 유행을 개발해 돈을 벌려는 ‘자본주의의 음모’라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비만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체중조절이 먼저냐 행복이 먼저냐를 따지는 것도 부질없다. 남의 일이라면 정치적 사회적으로 복합적 분석만 하다 날 새워도 관계없지만 내 문제라면 해결을 하는 게 우선이고 최선이다. 비만관리 산업에 돈을 바치더라도 ‘먹은 칼로리보다 태운 칼로리가 많아야 살이 빠진다’는 본질이 달라지진 않는다.

단순한 얘기를 이처럼 복잡하게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가 처한 현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에서다. 경제학자도 아니면서 나는 시장경제의 자유와 경쟁력을 옹호해 왔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심해지면서 시장경제와 경제학 자체에 대한 신뢰까지 흔들리자, 살이 안 빠져 고민하듯 혼자 초조했다.

해마다 경제성장 보고서를 내놓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3일 발표한 보고서를 보고 나는 내심 만세를 불렀다. 시장경제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음을 확인해줬기 때문이다. OECD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구조개혁과 인적자본 투자 등 우리가 과거 중요하다고 했던 정책들은 지금도 여전히 중요하다”고 했다. 무엇보다 강조한 건 정부가 위기 가운데서도 긴 안목의 성장을 위해선 개혁을 계속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OECD는 당장의 수요확대를 위해 정부가 인프라 투자와 재정지출을 늘리되 그중 교육시설 투자와 근로자 훈련에 더 신경 써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와 함께 장기적 성장을 위해 시장진입을 막는 반(反)경쟁적인 규제를 없애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OECD 국가 중 노동생산성이 가장 뒤지는 우리나라는 교육, 훈련, 연구개발, 노동유연성 개혁이 필수라고 했다.

이에 대해 꼭 경제성장을 해야 하느냐고 이의를 제기할 순 있다. 하지만 경기침체가 삶의 질에 좋지 않다는 건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성장이 먼저냐 분배가 먼저냐를 따지느라 허송세월할 일도 아니다. 좀 더 잘살기 위해선 놀고먹기보다 일하는 데 쓰는 에너지가 더 많아야 한다는 건 너무도 분명하다.

성장의 원칙도 변하지 않았다

서민 위한다며 규제개혁 반대, 경쟁력 키우는 경쟁 절대반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당장 편하자고 비만 만세를 외치는 것과 다름없다. 비만이 성인병으로 이어져 개인과 사회의 부담으로 돌아와도 절대 책임 안 질 사람이 그들이다. 평생 ‘운동’만 하느라 제 힘으로 1000원 한 장 벌어본 일 없는 그들이 경제난의 고통을 알 리 없다.

경제위기 속에서도 성장의 단순한 원칙은 뒤집히지 않았다. 생산성과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선 경쟁을 해야 하고 그러자면 반경쟁적 규제를 풀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증가한 국민소득으로 뒤처진 이들을 더 따뜻하게 배려해야 하는 건 물론이다. 내 생산성 높일 수 있게 시장진입 장벽 풀어달라는데, 내 자식 경쟁력 높일 수 있게 교육개혁 해달라는데 그걸 못해 쩔쩔맨다면, 그건 정부도 아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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