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하종대]남과 북에 ‘반쪽대우’ 받는 中항일유적지

  • 입력 2009년 2월 25일 02시 58분


중국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의 주도 옌지(延吉)에서 백두산 방향으로 90km 들어가면 청산리전투의 현장이 나온다. 허룽(和龍) 현 소재지에서도 20km나 산골짜기를 따라 들어가야 하는 심산유곡이다.

김좌진 장군과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2000여 명의 독립군은 이곳에서 1920년 10월 21일부터 6일간 치열한 전투 끝에 일본군 토벌대 700여 명을 사살하는 빛나는 승리를 거뒀다.

청산리 뒷산 명당엔 청산리대첩을 기념하는 높이 17.6m의 대형 기념비가 우뚝 서 있다. 2001년 8월 한국 정부와 옌볜 조선족 동포, 중국 지방 당국이 힘을 합쳐 세운 기념비다. 지난해엔 기념비로 올라가는 168개의 계단과 난간도 수리했다.

청산리에 사는 한족 주민 야오위안펑(姚元豊·47) 씨는 “이곳은 옌볜에서도 오지 중 오지”라며 “그럼에도 매년 2000∼3000명의 한국인이 이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3·13 반일집회가 처음 열렸던 룽징(龍井)의 조밭 터나 3·13열사릉, 윤동주 시인의 생가 등도 한국 정부나 민간단체의 지원을 받아 깔끔하게 단장됐다. 윤동주의 생가와 많은 독립 운동가를 배출한 명동학교가 있는 룽징의 명동촌은 연간 2만∼3만 명의 한국인이 찾는 관광명소가 됐다.

하지만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나 1933년부터 1941년까지 200여 명의 독립군을 이끌고 혁혁한 전과를 거둔 동북항일연군 제2방면군(일명 김일성 부대)의 유적은 아예 방치돼 있거나 기념비가 있어도 허름하기 짝이 없다.

허룽 현의 훙치허(紅旗河) 전투와 왕칭(汪淸) 현의 뤄쯔거우(羅子溝) 전투, 샤오왕칭(小汪淸)의 근거지 보위전 등을 기념하는 표지석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유적엔 이조차도 없다.

북한은 1962년 김일성의 항일유적을 답사하면서 옌볜에서 태극기와 대한독립군 명단이 그려진 동굴을 발견했지만 이를 답사보고서에서도 제외한 채 외면했다.

옌볜의 조선족 동포들은 한국 정부도 민족계열의 독립운동 유적의 복원 및 보존에만 열심이지 사회주의 계열의 유적은 본체만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동안 간도 지역의 독립운동 유적의 발굴과 보존에 몰두해 온 김춘선 연변대 교수는 “어느 길을 걸었든 독립운동가들은 모두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생존을 위해 항일투쟁을 벌인 것”이라며 “이제 이 같은 ‘반쪽 대우’는 사라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하종대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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