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고영선]추경예산, 시간 못대면 김 빠진다

  • 입력 2009년 2월 16일 02시 58분


최근 한국은행 발표에 의하면 작년 4분기의 우리 경제규모는 연간으로 환산할 때 21% 줄었다. 이처럼 경기상황이 빠르게 악화되는 데 대응하여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많은 나라도 경기부양에 나서고 있다.

상반기 중 재정지출 집중해야

지출확대는 경기회복에 과연 도움을 줄 것인가? 과거 다른 나라의 사례를 살펴보면 확신하기는 어렵다. 1990년대에 일본이 택한 확장적 재정정책은 엄청난 적자와 부채만을 불러왔을 뿐이다. 1990년대 초 70% 정도였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는 계속 늘어나 최근 180% 가까운 수준에 달했다. 더 멀리 1970년대 석유파동 때에도 많은 선진국은 확장적 재정정책을 시행하였지만 성장률은 구조적으로 낮아지고 국가재정은 적자의 늪으로 빠져들어 갔다. 좀 더 엄밀한 통계 방법을 활용하여 각국의 데이터를 분석한 여러 연구는 재정정책이 종종 경기부양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한다면 재정을 통한 경기부양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또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원칙을 지킬 필요가 있다. 첫째는 시차(time lag)를 가능한 한 줄여야 한다는 점이다. 경기침체가 가장 극심할 것으로 보이는 올해 상반기에 재정지출을 집중할 필요가 있는데 그러려면 추경편성을 2, 3월에 마치고 3, 4월에는 집행을 시작해야 한다. 특히 국회는 조속히 추경을 통과시켜야 한다. 지난해 국회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해 추경편성이 5개월 이상 늦어졌던 선례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시차의 관점에서 바람직한 방법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보다 이미 시행 중인 사업의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만일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 한다면 당장 3, 4월에 시작할 수 있는 방안만 골라야 한다. 예를 들어 새로운 도로를 건설하기보다 기존 도로를 개·보수하는 편이 좋다. 또 경기가 회복된 후까지 이어지는 장기사업은 피해야 한다. 장기사업은 재정운용의 경직성을 높이고 경기과열을 낳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 경기침체로 세수가 감소하면 이를 모두 국채발행으로 보전하는 것 역시 재정의 자동안정화기능(automatic stabilizer)을 극대화할 좋은 방법이다.

추경편성에서 고려할 두 번째 원칙은 경기침체로 가장 큰 고통을 받는 실업자나 저소득층에 가장 많은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실업급여 수급자격을 완화하거나 급여기간을 연장해주는 조치가 필요하다. 또 올해 500억 원에 불과한 긴급복지지원제도의 예산을 10배 이상 늘리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전달체계를 정비함으로써 복지혜택이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양양공항 같은 자원낭비 금물

마지막 원칙은 장기적 생산성이 확실한 사업만을 골라야 한다는 점이다. 3567억 원의 예산을 들여 지은 양양국제공항은 작년 11월 1일 이후 ‘승객 제로(0)’의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공항을 짓는 과정에서 주변의 지역경제에는 도움이 되었고 지금도 70명의 직원이 근무하니 계속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국가자원이 낭비된다면 결국 성장잠재력이 쇠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몰락이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추경은 자칫 정치인이 지역사업을 챙기는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이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단기적인 경기부양과 빈곤해소, 그리고 장기적인 성장잠재력 확충 가운데 어느 것에도 도움을 주지 못하는 추경은 정부부채 증가만을 낳을 것이다.

고영선 KDI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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