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사상 최저 금리라도 ‘돈맥경화’ 못 풀면 헛일

  • 입력 2009년 2월 13일 02시 59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2.5%에서 사상 최저 수준인 2.0%로 낮췄다. 지난 4개월간 금리인하 폭은 3.25%포인트로 사상 최대다. 작년 9월 이후 한은이 시중에 공급한 돈은 22조 원에 이른다. 실물경제 침체가 심각하기 때문에 취하는 조치들이다. 금융통화위원회는 어제 “국내경기 하강속도가 빨라지고 있고 향후 성장의 하향(下向) 위험도 매우 크다”고 밝혔다.

금리를 대폭 내리고 자금을 많이 푸는 데도 신용경색은 여전하다. 시장금리는 당국의 기대만큼 떨어지지 않고 풀린 돈은 기업 투자 등에 쓰이지 못한 채 금융권에 묶여 있다. 일부 분석가들은 기준금리를 내리고 통화량을 늘려도 시장금리는 움직이지 않아 통화정책이 먹히지 않는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이미 빠지고 있다고 본다.

어제 청와대에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는 은행들이 돈 떼일 염려 없이 대출하도록 해주기 위해 수출 및 창업 중소기업 등에 대한 채무보증 비율을 종래 95%에서 100%로 올렸다. 공적 보증을 통해 은행돈을 빌릴 수 있는 중소기업 범위도 작년 39만 개에서 올해 55만 개로 늘려 ‘돈맥경화’ 속에서나마 돈이 돌도록 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의 보증을 받고서야 돈을 빌려주는 은행은 은행이 아니다. 은행 기능의 회복을 위해서라도 기업 구조조정이 빨라져야 한다. 금융당국은 은행 대출에 대한 면책(免責) 약속을 지키는 등 대출 현장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미시적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은행과 기업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막는 것도 필수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장차 필요하면 상당히 과감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면서 국채나 기업어음(CP) 직접 매입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이런 극약처방을 쓰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

이와 별도로 실물부문 위축에 따른 금융의 충격을 최소화하려면 부동산 및 서비스업 등의 획기적 규제 완화를 서둘러야 한다. 이는 내수 진작책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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