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성훈]美보호무역 회귀 안된다

  • 입력 2009년 2월 3일 02시 58분


동아일보는 “1월 28일 미국 하원이 819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법안을 승인하면서 고속도로, 교량, 학교, 병원 등을 건설할 때 미국산 철강 제품 외에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바이(BUY) 아메리칸’ 조항을 부칙에 끼워 넣었다”고 보도했다(1월 31일자 A2면). 미국의 이러한 움직임은 가장 불행한 시점에, 가장 불행한 상황에서, 가장 그러지 말아야 할 나라가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하는 일을 의미하는 바, 만약 미국이 이러한 조치를 실행에 옮길 경우 세계 경제에 여러 가지 부정적인 파장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다자간 무역체제 무너뜨릴건가

우선 지난해 9월경부터 글로벌 금융위기의 맹아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많은 경제학자와 정책담당자가 절대로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해서는 안 된다는 강한 경고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가장 커다란 국민경제인 미국이 보호주의적 정책 방향으로 나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문제가 된다.

과거 1930년대 세계 경제가 경험한 대공황의 원인 중 하나가 자국 환율의 평가절하와 보호무역을 통해 자신의 수출은 확대하되 수입은 축소하려고 한 ‘근린궁핍화’ 정책 아니었던가. 그때도 미국에서 촉발된 경기침체가 여러 채널을 통해 세계 대공황으로 발전했고, 급기야는 독일에 나치정권까지 생겨나게 만들었다는 평가가 있지 않은가. 이명박 대통령도 이런 점을 우려해 지난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미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을 고려할 때 글로벌 금융위기의 극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미국의 경제 정책적 지도력이 매우 긴요하다. 미국이 보호주의를 강화할 경우 유럽연합(EU)과 일본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이른바 보호무역의 도미노 현상이 우려된다. 이러한 보호무역의 도미노 현상이야말로 현재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세계 공황과 같은 더 커다란 위기로 끌고 갈 만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하겠다. 이는 세계 경제에는 물론이고 미국에도 결코 이롭지 못한 결과다. 미국의 긍정적인 리더십이 더욱 요구되는 대목이다.

미국의 철강산업 보호무역주의가 만약 용인된다면 이는 여기에 국한되지 않고 자동차와 정보기술(IT) 등 여러 산업분야로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갈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렇게 될 경우 세계 경제는 1940년대 말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가 출범한 이후 줄곧 무역투자의 자유화 방향으로 달려오던 추세에서 보호무역주의가 광범위하게 확산됨을 의미한다. 이는 또 그동안 이뤄 놓은 GATT와 세계무역기구(WTO)로 대변되는 다자간 무역체제가 일거에 무너짐을 의미한다. 최근 수년 동안 어렵사리 끌어오면서 명맥을 유지해 온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은 이제 설 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크다. 세계 경제를 지탱해 왔던 자유로운 무역과 투자의 연결고리가 와해되는 셈이다.

WTO회원국과 공조, 제소 대비를

다행히도 미국의 바이 아메리칸 정책을 보는 외부의 눈길이 곱지 않아서 실행에 옮겨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해 보기도 한다. 유럽에서는 특히 유럽철강산업연합회가 나서 EU 집행위원회에 미국의 정책을 WTO에 제소하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캐나다와 일본 등 주요 무역국도 미국의 느닷없는 보호무역주의를 경고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 정부도 EU, 캐나다, 일본 등 WTO 주요 회원국과 긴밀한 공조체제를 형성하여 주도면밀하게 대응해 나가야 한다. 필요한 경우 WTO에 제소할 가능성도 열어 놓고 이에 대비한 자료 축적 등 준비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박성훈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전 한국국제통상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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