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천광암]삼성의 길, 도요타의 길

  • 입력 2009년 1월 28일 02시 59분


삼성전자와 도요타자동차는 모두 후발주자로 출발해 해당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된 기업이다. 하지만 두 기업의 경영철학과 기업문화는 대조적이다.

삼성의 창업 이후 일관된 경영 화두가 ‘사람(人)’이었다면 ‘도요타 웨이’의 키워드는 ‘사물(物)’이었다.

삼성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은 ‘의인물용 용인물의(疑人勿用 用人勿疑·의심스러운 사람은 쓰지 말고 쓴 사람은 의심하지 말라는 뜻)’라는 말을 즐겨했다. 그는 이 원칙에 따라 현장은 계열사 사장에게, 기획 인사 재무 감사 등 그룹의 중추기능은 비서실에 일임했다. 자신은 미래전략 수립과 인재육성 등 ‘큰 그림’을 그리는 일에만 전념했다. ‘의인물용 용인물의’의 철학이 있었기에 삼성은 무역→제당→모직→가전→반도체 등으로 숨 가쁜 도약과 발전을 거듭해 올 수 있었다.

이에 비해 도요타자동차의 경영철학은 격물치지(格物致知·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 앎에 이른다는 뜻)에 가깝다. 도요타생산방식을 체계화한 오노 다이이치(大野耐一) 전 도요타자동차 부사장은 “모든 사물에 대해 ‘왜’를 다섯 번 반복해 보라”고 늘 강조했다. 격물치지와 현장주의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관계이기도 하다. 도요타맨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 중에는 이런 것이 있다.

“모노(者·사람)에게 묻지 말라. 모노(物·물건)에 물어라.”

중간관리자나 참모, 보고서를 믿지 말고 책임자가 직접 눈으로 현장을 본 뒤 판단하라는 뜻이다.

요컨대 ‘관리의 삼성’ ‘현장의 도요타’는 하루아침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 창업정신과 기업문화가 수십 년간 쌓이고 녹아들어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삼성이 16일 사장단 인사를 통해 ‘관리의 삼성’에서 ‘현장의 삼성’으로 변신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껏 걸어본 적이 없는 길을 가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현장경영 선언의 후속 조치로 21일 본사 인력 1400명 중 1200명을 현장에 전진 배치했다. 이들이 일할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수원사업장 디지털연구소에 있는 이건희 전 회장의 집무실도 없앤다고 한다. 도요타자동차가 창업주의 손자를 차기 사장으로 내정하는 등 구심력 강화에 전력투구하고 있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현장의 스피드와 창의성에 승부를 건 삼성. 창업주 가문의 깃발 아래 똘똘 뭉쳐 역경을 헤쳐 나가려는 도요타. 어느 쪽이 옳은 판단을 했는지 사전에 평가할 수 있는 경영학 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쉽게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 이상 올바른 선택이었다는 확신을 갖고 성공을 위해 매진하는 것 외에는 어떤 대안도 없다.

삼성전자의 수출은 2007년 기준으로 한국 수출의 15%를 차지한다. 삼성그룹 전체가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20%에 이른다고 한다. 삼성의 실패는 단순히 삼성의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 한국경제 전체의 재앙을 뜻한다. 따라서 정부나 여론도 삼성의 도전이 성공하도록 응원할 필요가 있다.

굳이 응원까지는 아니어도 좋다. 최소한 부당한 반(反)기업정서에 편승해서 갈길 바쁜 기업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지금은 “일하지 않는 자가 일하는 자의 가혹한 비판자 노릇을 하는 일”을 참아줄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천광암 산업부 차장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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