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한기흥]국회의원보다는 장관?

  • 입력 2009년 1월 23일 02시 58분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1월 2일 개각 때 산업자원부 장관으로 입각했었다. 당시 그는 열린우리당 의장이었다. 2005년 10월 재·보궐선거 패배로 문희상 의장 등 지도부가 총사퇴한 상황에서 구원투수로 당을 맡아 2006년 2월 전당대회를 준비하던 비상시기였지만 청와대의 제의를 받고 내각에 들어갔다.

본인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었겠지만 당은 시끄러웠다. 144명의 의원과 약 50만 명의 당원을 이끄는 집권 여당의 대표가 국무총리나 부총리도 아닌 장관 자리를 좇는 것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세간에선 “장관이 여당의 대표보다 더 나은 모양”이라는 쑥덕거림이 적지 않았다.

정 대표는 입각에 앞서 오래전부터 장관직을 희망했었다. 그의 선택은 장관 자리가 일부 의원들에게 얼마나 선망의 대상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대표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지만 정치적 야심이 큰 일부 의원은 그에 만족하지 않고 ‘경력 관리’ 차원에서 장관을 해보고 싶어 한다.

노무현 정부에선 2004년 6월 이해찬 의원이 총리로 발탁됐고, 7월엔 열린우리당 의장(2004년 1∼5월)을 지낸 정동영 씨가 통일부 장관으로, 김근태 의원이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각각 입각했다. 유시민 의원은 2006년 1월 개각 때 정세균 의장과 함께 입각해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다. 한명숙 의원은 2006년 4월 총리가 됐다.

18일 사정기관장 인사와 19일 개각 때 한나라당 의원이 한 명도 기용되지 못한 데 대해 당 쪽에선 서운해하는 의원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특히 자천타천으로 장관 후보로 거명됐던 의원들의 실망이 큰 듯하다.

정치인의 입각은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대체로 의원들은 유권자들과의 접촉, 민생 탐방 등을 통해 우리 사회를 밑바닥부터 맨 위층까지 폭 넓게 들여다보기 마련이다.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잘 아는 것은 현실적인 정책을 펴는 기초다. 이는 정치인들이 책상물림인 교수나 탁상행정을 펴기 일쑤인 관료 출신보다 나은 점일 수 있다.

장관을 꿈꾸는 의원들 가운데는 전문성과 능력을 갖춰 무난히 직무를 수행할 것으로 보이는 이도 있고, 당사자들에겐 미안하지만 깜냥이 의문시되는 이도 있다. 후자의 경우는 전형적인 ‘자가발전’형이다. 이들은 장관이 못 되더라도 유권자들에게 ‘장관감’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만으로도 남는 장사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눈에 비친 의원들의 모습이다. 국회에서 일은 안 하고 싸움질만 해놓고선 감투만 탐한다는 싸늘한 시각이 시중엔 엄존한다. 국회의원의 직무를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장관직을 제대로 하겠느냐는 얘기다. 국회의원 299명 중 무능한 의원은 다른 의원들에게 묻혀 국민의 이목을 끌지 않은 채 그럭저럭 임기를 채울 수도 있지만 장관이 무능하면 그 피해가 국민에게 직접 돌아간다. 장관을 고르는 기준이 훨씬 더 엄격해야 하는 이유다.

지금 여야 의원들 중에선 장차 대한민국을 이끌 대통령이나 총리, 장관이 나올 수 있다. 국회는 그런 정치적 재목을 키우는 장이기도 하다. 큰 뜻을 품은 정치인이라면 개각에 일희일비할 게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쌓도록 평소 의정활동부터 성실히 하는 게 먼저다. 국민이 국회에 부여한 책무는 장관직보다 결코 가볍지 않다.

한기흥 정치부장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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