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아프리카 의료봉사 33년 ‘자랑스러운 경기인상’ 민병준 박사

  • 입력 2009년 1월 16일 02시 58분


아프리카에서 30년 넘게 살며 30여만 명의 환자를 치료해 온 민병준 박사는 ”아프리카에 남아서 계속 의료봉사활동을 펼치고 싶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아프리카에서 30년 넘게 살며 30여만 명의 환자를 치료해 온 민병준 박사는 ”아프리카에 남아서 계속 의료봉사활동을 펼치고 싶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무의촌 환자들 눈에 밟혀 돌아올 수 없었다”

《“아프리카에서 사랑과 봉사의 마음을 배웠습니다. 아프리카 환자들이 나를 원하는 한 계속 아프리카에 남아 있고 싶습니다.” 아프리카에서 30년 넘게 의료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는 민병준(70) 박사. 그는 아프리카에서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린다. 그는 세브란스병원, 백병원 등에서 외과의사로 일하며 안정된 생활을 하다가 1975년 아프리카 우간다로 건너갔다. 당시 아프리카는 ‘제3세계’를 형성하며 국제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시기. 국제정치 무대에서의 남북 대결도 치열하던 때라 박정희 대통령은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우호 관계를 확대하기 위해 부심했다. 그런 시절이었다. 우간다를 거쳐 스와질란드로 건너간 그는 의술을 인정받아 왕족 주치의로 활동하고 있다. 오지를 찾아다니며 환자를 돌보는 일도 계속해오고 있다.》

우간다 5년-스와질란드 10년 근무 후 현지개업

이 모든 게 잘 견뎌준 아내-잘 자라준 두 아이 덕

민 박사는 경기고 총동문회에서 수여하는 ‘자랑스러운 경기인상’을 수상하기 위해 13일 서울을 찾았다.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다”며 14일 수상식이 끝나자마자 출국을 서두르는 그를 서울 마포 경기고 53회 동창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본 그의 눈빛은 선하고 따뜻했다. 그는 ‘경기인상’ 수상에 “모교 출신으로 훌륭한 사람이 많은데 아프리카에서 오랫동안 봉사활동을 한 내가 다소 ‘특이한 사람’으로 보여서 상을 준 것 같다”며 웃었다.

―1975년 당시 아프리카로 가기로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지금도 많은 사람이 아프리카 하면 ‘미개한 대륙’ ‘못사는 대륙’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30여 년 전에는 오죽했겠는가. 쉽게 결정했다면 거짓말이고, 한국에서 여러 차례 농촌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우리보다 더 못사는 나라에서 ‘나눔의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또 당시 국제 정세가 아프리카 국가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확립할 필요가 있었다. 지금 아프리카에 남아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랑과 봉사의 마음이지만 처음 아프리카행을 결정할 때는 국가와 국익도 중요했다.”

―우리나라가 아프리카에 의사를 보낸 것이 국익에 큰 도움이 됐다고 보나.

“당시 우리나라 정부는 정책적으로 의사들을 아프리카에 파견했다. 한국 의사들은 성실하고 의술이 좋아 아프리카에서 큰 환영을 받았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한국을 동경하고 우호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다.”

민 박사는 1980년부터 스와질란드에 살면서 왕족 주치의로 일하고 있다. 국왕의 건강도 즉위 때부터 지금까지 그가 관리하고 있다.

“아프리카는 분쟁이 끊이지 않는 가난한 곳입니다. 그러나 아프리카 사람들을 만나보면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착하고 정이 많습니다. 일단 마음을 열고 나니까 그들과 친구처럼 지낼 수 있었습니다.”

민 박사는 1965∼1966년 베트남전쟁에 군의관으로 복무한 참전용사이기도 하다.

그는 “베트남과 아프리카에서 수많은 전쟁과 갈등을 지켜보면서 국가와 민족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며 “요즘 젊은 세대는 나라를 사랑하고 아끼는 의식이 부족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처음 우간다에 파견됐을 때 5년 근무조건이었다고 하는데….

“우간다에서 5년 근무기간이 끝나고 귀국하려고 했다. 그러나 변변한 의사도 없이 질병으로 고생하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밟혀 귀국행 비행기를 탈 수 없었다. 우간다에 이어 스와질란드로 건너가 10년 동안 파견 의사로 근무하다가 병원을 개업했다. 아프리카 환자들이 나를 원하는 한 계속 아프리카에 남아 있겠다.”

―아프리카에서 민 박사의 손을 거쳐 간 환자는 얼마나 되나.

“지난 33년 동안 하루 평균 외래 진료환자 30명, 수술은 3∼5건을 해오고 있다. 거기에 매달 한 차례 떠나는 무의촌 봉사활동에서 250∼300명의 환자를 봤으니 30만 명은 족히 넘을 것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식습관과 생활태도에서 비롯된 치질, 탈장 질환이 많다.”

―가족은 아프리카 생활에 잘 적응했나.

“딸이 3세, 아들이 6개월 때 우간다에 갔다. 분유를 파는 곳이 없어 1600km 떨어진 케냐에 가서 분유를 사다 먹이곤 했다. 이런 악조건을 이겨내고 아프리카에서 초중고교를 다닌 아이들은 건강하게 성장했다. 지금은 독일과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아내도 아프리카 생활에 잘 적응해 지금은 나보다 더 아프리카를 사랑한다.”

―민 박사가 보는 아프리카는 어떤 곳인가.

“아프리카는 아시아 다음으로 세계를 움직일 잠재력을 가진 ‘미래 대륙’이다. 우리나라를 위해서라도 아프리카에 대해 사랑과 관심 어린 시선이 필요하다. 정부가 은퇴한 한국의 유능한 전문의들을 고용해 예전처럼 ‘파견 의사’로 보내는 방안을 강구했으면 좋겠다.”

민 박사는 “여기까지 오는 비행기표 값이 1800달러인데 이 돈이면 가뭄 때문에 굶주리는 아프리카 어린이 1000명에게 밥 한 끼를 먹일 수 있다”며 “이 돈을 들여서라도 여기 와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우리와 함께 사는 지구촌 동포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김기용 기자 k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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