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오세정]만지고 느끼는 과학관을

  • 입력 2009년 1월 15일 03시 01분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가 넘으면 될까? 물론 국민소득이 어느 정도 이상은 되어야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겠지만 국민소득이 높다고 해서 바로 선진국이 되지는 않는다. 1인당 국민소득이 서구의 웬만한 나라보다 높은 중동 산유국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선진국(先進國)이란 문자 그대로 앞서 나아가는 나라라는 의미이다. 인류의 진보에 기여하고 세계적 문화유산을 키워나가는 나라이어야 선진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인류의 진보에 기여할 수 있는 국가로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열쇠는 과학기술에 있다. 현대는 과학기술의 시대여서 한 나라의 경제가 발전하려 해도 과학기술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인류 지적재산의 새로운 축적도 대부분 과학기술 연구에서 나온다. 우리나라도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하여 이공계 기피 완화정책 등 국가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선진국에 비하여 한 가지 크게 부족한 면이 있다. 바로 과학문화의 창달이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과학기술의 도구적인 면만 강조해 왔다. 과학기술 입국이라는 구호가 거창한 국정목표의 하나인 적이 있었지만 당시 위정자들에게 과학기술은 단지 국가의 산업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도구일 뿐이었다. 이 구호 덕분에 중고교 교육에서 과학 과목이 중시되어 학생들이 과학 공부를 많이 하였지만 이는 과학이 좋아서가 아니라 입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기 때문이었다.

과학기술은 단순히 물질적인 풍요를 추구하는 경제의 종속적인 도구가 아니고, 과학교육은 대학입시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과학의 본질은 과학에 내재된 합리적인 사고방식과 문화적 가치에 있다. 과학교육의 본질은 학생이 자연에 대하여 느끼는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데 있다.

과학적 합리성을 어린 학생에게 길러주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바로 좋은 과학관의 설립과 운영이다. 과학관을 통하여 학생이 자연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고 사물의 작동원리를 배울 수 있다. 그러기에 선진국에서는 곳곳에 훌륭한 과학관을 세워서 어릴 때부터 학생이 과학을 직접 체험하도록 해준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스미스소니언박물관과 일본 도쿄의 과학미래관(미라이칸), 프랑스 파리의 라빌레트 과학산업관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겠다.

이들 과학관의 공통점은 전시물을 단순히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만지고 작동하며 느껴보도록 꾸며 놓았다는 사실이다. 어릴 때부터 재미와 흥미를 통해 과학을 친숙하게 접하고 이를 통해 과학문화에 대한 저변 확대와 지속적인 과학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이다. 은퇴한 과학기술인과 대학생은 물론 어린이 관람객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고교생까지 나서는 자원봉사자의 열정도 대단하다. 또 참신한 콘텐츠와 다양한 기획전시를 끊임없이 개발하여 운영하므로 다시 방문해도 처음 관람하는 느낌을 준다.

우리나라는 인구수나 경제 규모 면에서 볼 때 아직도 과학관 시설이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다행히 얼마 전 경기 과천시에 국립과학관이 새로이 문을 열었다. 축구장 35개 크기 규모와 최첨단 전시시설로 볼 때 동양권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앞으로 얼마나 내실 있게 운영하느냐가 중요한 관건이다.

국립과천과학관을 통해 많은 어린이와 학생이 과학에 푹 빠져 진정한 흥미를 느끼면 이공계 기피현상이 자연적으로 해결되고 세계적 과학지식 창출에 기여할 우수한 과학자가 많이 배출되리라 확신한다. 무엇보다 국내의 과학문화 창달에 기여하여 모든 국민이 과학적 합리성을 추구한다면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

오세정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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