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무하]공업용, 식용둔갑 더는 안된다

  • 입력 2009년 1월 14일 03시 02분


6·25전쟁 후 1970년대까지 경제가 피폐하고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에 남대문시장에서 팔던 꿀꿀이죽은 서울시민에게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의 하나였다. 미군이 먹고 난 후 버린 재료를 모아 끓여서 죽으로 만들었는데 당시 우리나라 사람이 구경하기 힘든 음식물이 들어 있었다. 미군에게는 식용이 아니었지만 우리 국민에게는 양질의 음식이었다.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식량 부족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생하는 국가에서는 우리가 먹지 않고 버리는 것을 식용으로 이용한다.

1989년에 미국의 공업용 우지를 수입하여 라면 튀김용 식용 우지로 사용하여 사달이 난 적이 있었다. 당시 식품과학자들은 공업용일지라도 위생적으로 정제했기 때문에 식용으로 무방하다고 산업계의 손을 들어 줬다. 반면에 시민단체는 걸레를 아무리 잘 빤다고 행주가 되느냐며 반발했다. 미국에서 도축장 부산물로 생산하는 우지는 식용의 경우 법적으로 매우 엄격한 규정을 적용해 위생적으로 처리하지만 공업용은 그러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겨울철이 되어 한동안 대구머리탕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국내에서 소비하는 많은 대구 머리가 어디에서 공급되는지 궁금해했다. 선진국에서는 포획된 대구에서 살코기를 제외한 나머지를 사료용으로, 소위 공업용으로 폐기한다. 선진국에서 사료용으로 분류한 대구 머리를 싼 가격에 수입하여 많은 소비자가 즐겨 먹는 대구머리탕 원료로 사용한다. 우리는 예로부터 어두육미라 하여 생선의 머리를 즐겨 먹었다.

요사이도 공업용을 수입하여 식용으로 사용하는 사건이 심심찮게 터진다. 비싼 식용을 수입하느니 가격이 훨씬 저렴한 고급 공업용을 구입하여 위생적으로 처리한 후 식용으로 사용하는 편이 국가 경제적으로나 산업 경제적 차원에서 볼 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어차피 우리가 선진국이 아니라면 문화적 차이도 있는데 꿀꿀이죽 먹는 셈 치고 공업용을 식용으로 전환하는 방법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수준이다.

식문화는 나라마다 독특하여 우리가 먹지 않는 것이 다른 나라에서는 별미일 수 있고 반대로 우리가 즐겨 먹는 것을 다른 나라에서는 기피할 수 있다. 하지만 세계화로 인하여 타국의 식문화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이국 식품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는 추세를 감안한다면 소비자 수준은 계속 높아질 것이다. 이제는 우리의 식문화라고 해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고 밀어붙일 수 없는 실정이다. 우리의 독특한 식문화라고 해서 남들이 버리는 것을 가져다 먹을 수는 없다.

국제화를 통해 소비자의 수준은 높아진다. 정제 처리 방법이 아무리 발달해도 공업용을 식용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으면 모든 부문이 그에 걸맞아야 한다. 이기적이고 비윤리적인 기업이나 개인으로 낙인찍힐 위험을 안고도 공업용을 식용으로 전용하는 행위는 후진국형 사고에 속한다.

식품이나 음식을 생산 판매하는 행위는 식용 원료를 사용한다는 약속을 전제로 한다. 공업용 원료를 사용하는 행위는 소비자를 기만하는 셈이다. 우리 식품산업계가 작은 이익에 연연하여 큰 것을 잃어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후진국형 사고에서 벗어날 때이다. 한두 사람의 잘못된 판단으로 국산 식품에 대한 신뢰를 잃으면 식품산업 전체가 불신을 받아 설 자리를 잃는다. 새해는 공업용 원료를 식용으로 사용했다는 보도가 없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음식문화가 자리 잡는 한 해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이무하 한국식품연구원 원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