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허진석]임용고시 오류, 책임 안 지고 ‘자진신고’ 생색만

  • 입력 2009년 1월 5일 02시 57분


“어떻게 보면 그냥 놔 둬도 되는 문제인데 ‘오류가 있다면 인정을 하자’고 의견이 모여….”

2일 교육과학기술부 기자실로 처음 출근한 기자는 귀를 의심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이날 기자실에서 2009학년도 중등임용고사 1차 시험(작년 11월 9일) 물리 37번 문제의 답이 잘못됐다는 내용을 발표하면서 ‘어떻게 보면 그냥 놔 둬도 되는 문제’라는 말을 태연히 내뱉은 것이다.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었다. 평가원 관계자들은 뒤이은 보충 설명과 기자의 보완 취재 때도 같은 취지의 발언을 수차례 더했다.

평가원 관계자들은 “1차 시험의 이의제기 기간에 아무도 그 문제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자신들이 자진해서 오류를 정정하는 것이라는 점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발언으로 비쳤다.

평가원은 문제만 내는 곳이 아니다. 출제 과정은 물론이고 이의제기 기간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문제를 다시 점검하고 오류를 발견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런데도 평가원은 익명의 제보자가 평가원장 앞으로 오류를 지적한 등기우편을 보내기 전까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발표 당일 평가원은 사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오류 때문에 탈락한 22명의 수험생에게 올해 1차 시험을 면제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는 ‘후속조치’만 발표했다. 오류를 늦게 발견하는 바람에 이미 1차 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2차 시험 응시자가 정해졌고 2차 시험까지 마친 상태이기 때문에 나온 조치다.

그래놓고도 자신들이 늦게나마 ‘용기’를 갖고 오류를 수정했기 때문에 자칫 모르고 지날 뻔한 억울한 탈락자들을 구제하게 됐다는 뉘앙스의 말만 늘어놨다. 제보자가 ‘조용히’ 등기우편을 보내지 않고 인터넷에라도 올렸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번 오류로 인생의 갈림길에 선 22명이 1년의 시간을 허비하게 됐고, 2010학년도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은 작년 수험생의 1차 합격 처리로 자신들의 ‘몫’이 줄어들지 모른다며 반발하고 있다.

시험 문제는 잘못 출제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잘못을 책임지는 태도에는 결코 ‘오류’가 있어서는 안 된다.

교육 부처의 수장(首長)들은 조직 내의 이런 무책임한 태도와 문화 때문에 교육개혁이 더딘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돌아볼 때다.

허진석 교육생활부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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