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육정수]아무리 和而不同이라지만

  • 입력 2009년 1월 2일 20시 37분


지난해 말 이런저런 송년회에서 한 해 동안의 다양한 소회를 들으면서 사람 생각은 서로 같지 않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대개의 공사(公私) 모임이 어떤 동질성을 바탕으로 이뤄짐에도 불구하고 참여자들의 의견은 각양각색이다. 사람들은 평소 남과 다르다는 점에 대해 불안해하거나 심지어 적대감을 갖기도 한다. 다르게 살아가는 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탓이다.

교수신문이 2009년의 사자성어로 고른 ‘화이부동(和而不同)’이 눈에 띈다. 새해엔 이념과 계층 간의 갈등을 극복하고 화합하자는 뜻이라고 한다. 지난해 마지막 날까지 각종 쟁점법안의 통과 여부를 둘러싸고 전투를 치르다시피 한 국회에 비춰보면 적절한 화두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화이부동해야 할 곳은 국회이고 정치이다.

세상에는 ‘같음’보다 ‘다름’의 힘이 강한 경우도 적지 않다. 상반된 힘이 부딪치는 자연현상이나 의견이 충돌하는 인간관계가 유익한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이 그런 예다.

최고의 오징어로 꼽히는 ‘울릉도 오징어’는 동해의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독도 인근 조경수역(潮境水域)에서 잡힌다. 찬물과 따듯한 물의 조화(調和)로 어느 수역보다 플랑크톤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어디 바다뿐이겠는가. 이질적인 대륙과 대륙, 나라와 나라, 지방과 지방 이 만나는 곳에선 예로부터 문화와 상업이 번성했다. 아시아와 유럽의 두 대륙에 걸쳐 있는 터키의 최대 도시 이스탄불이 그렇다. 동서양의 가교로서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번갈아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도시 전체가 역사적 문화적 유산으로 가득 차 있다.

‘다름과 충돌’이 주는 이익도 많아

남미(南美)만큼 여행하기에 마음 편한 곳도 드물다. 스페인어는 물론이고 영어가 잘 안 통해도 그곳 사람들의 따뜻한 인정과 열린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부터 여러 인종이 섞이면서 혼혈인이 다수를 이뤄 인종차별도 찾아보기 어렵다.

2008년은 우리 사회에 상반된 이념과 주장이 서로 부딪치면서 내내 파열음을 일으킨 한 해였다. 좌파 정권 10년에 이은 우파의 집권으로 변화의 필요성과 좌파의 상실감이 충돌한 탓이다. 각료 인선 과정에서의 ‘강부자 내각’ 시비, 미국산 쇠고기 파동과 이로 인한 촛불시위, 대운하 논쟁, 정부 및 공기업의 물갈이 논란, 역사 교과서의 이념 편향 논란, 그리고 여야의 법안 투쟁 등등. 쟁점마다 의견이 갈리면서 갈등과 혼란을 부채질했다.

그 중심에 국회가 있었다. 여의도 의사당은 불통(不通)과 비타협, 불복, 폭력의 전진기지나 다름없었다. 민주 국가의 양당제와 다당제는 단순한 복수정당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기본적으로 다른 의견, 다양한 의견의 존재를 인정하는 제도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좀 더 나은 결론을 끌어내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는 소수당이 정기국회 회기를 넘기면서까지 시급한 민생 법안을 심의조차 하려 들지 않았다. 상임위 회의실의 문을 열기 위해 전기톱과 쇠망치를 동원하고 끝내는 본회의장까지 불법 점거했다.

대화할 생각이 없다면 표 대결로 가야

소수당의 이런 행태까지 ‘다른 의견’으로 존중받기는 어렵다. 소수당이 다수당을 대화의 상대방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듯한 행태를 보인 것도 다당제의 정신에 반한다. 오죽했으면 “일당독재가 낫겠다”는 푸념과 국회 무용론(無用論)까지 나왔을까. 공산국가의 일당독재는 민의(民意)에 의해 선출된 정당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교의 대상조차 될 수 없는데도 그랬다.

정당마다 이념과 정책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그것을 대화와 협상을 통해 조정하고 승화시키는 것이 민주주의의 요체다. 다수당이든 소수당이든 서로를 대화의 상대방으로 인정하고 끝까지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표 대결을 벌이게 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표 대결에 패배했을 경우의 승복도 그런 정신에 입각해야 한다.

육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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