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인철]위기와 나눔의 교훈

  • 입력 2009년 1월 2일 02시 59분


지난해 12월 31일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열린 제야의 종 타종 행사 뒤 수많은 사람이 청계광장에서 열린 축제로 몰렸다. 하지만 예전 같은 열기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전에는 화려한 루체비스타 쇼를 보기 위해 몰려든 연인과 친구, 가족 인파로 광장은 활기가 넘치고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시민의 발길이 훨씬 줄어들었고 전력도 전에 비해 5%밖에 들지 않는 절전형 발광다이오드(LED)를 사용해 수수한 눈빛을 연출하고 있다. 단순한 조명의 변화에서도 경기불황의 그늘을 읽을 수 있다.

기축년 새해가 밝았지만 경제 사정은 우리를 우울하게 하고 사람들의 표정도 밝지 못하다. 더욱이 세계적 경제위기의 파고가 이제부터 본격 시작돼 기업 도산과 실업자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대학 졸업자가 40만 명이나 쏟아져 나오지만 일자리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나 마찬가지다. 수십 장씩 이력서를 내도 전화 연락조차 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고 유명대 졸업자도 번번이 고배를 마시는 취업 현장의 젊은이들을 보면 안쓰러울 뿐이다.

청계광장에서 만난 50대 후반의 아주머니는 새해 소원을 묻는 질문에 “군대 갔다 와서 놀고 있는 우리 아들이 취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학습지 회사 관계자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는 우리 국민이지만 최근에는 학원을 끊고 학습지를 시키거나 월 2만∼4만 원짜리 학습지도 끊으려는 조짐이 있다”고 걱정했다.

정부는 올해 일자리를 10만 개 늘리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LG경제연구원은 올 상반기에만 13만 개의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내놨다. 또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기간 시한 2년이 도래하는 7월 이후에는 비정규직 대량 해고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있다.

기업들이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가운데 쌍용자동차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등의 반장 조장급 간부들은 회사의 위기극복 방침에 동참할 것을 결의하고 있지만 일부 노조는 아직도 위기를 직시하지 못하고 과거의 투쟁 습관을 고집하고 있다.

그러나 너무 비관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 국민은 어려울 때 더 남을 돕고 단결하는 저력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1998년 외환위기 때는 시민마다 장롱을 뒤져 금붙이와 달러를 들고 나오는 ‘정성’을 모은 덕에 외채를 조기에 상환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국민을 단결시키는 데도 톡톡한 역할을 했다.

다행히 어려운 가운데도 나눔의 정신은 은은히 빛을 발하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는 지난해 말 현재 1456억 원의 기부금이 들어와 올 1월까지의 목표액 2085억 원의 69.8%를 달성했다. 특히 개인 기부가 385억 원으로 지난해 수준을 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한 통화에 2000원을 기부하는 ARS 전화 기부는 20만2676건에 4억500만 원이 걷혔다. 구세군도 32억1590만 원을 모금해 목표액을 초과했다. 형편이 넉넉지 않은 이들이 고이 간직한 우표, 헌혈증서, 교통카드, 유가환급금 등을 내놓았다는 사연은 가슴을 훈훈하게 한다.

전 세계적 경제위기이지만 일터에선 일자리를 나누고 허리띠를 졸라매 고용불안을 줄이고, 어려운 이웃에게 작은 온정이라도 나눌 수 있다면 우리는 위기를 얼마든지 넘을 수 있다.

이인철 사회부장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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