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사람]대한생명 장순애 팀장

  • 입력 2009년 1월 1일 00시 11분


지난해 12월 30일 오전 1시경 장순애 대한생명 남영지점 팀장(오른쪽)이 서울 중구 신당동의 패션몰 ‘유어스’의 한 상인에게 재무 설계 조언을 하고 있다. 대한생명 최초로 4회 보험여왕을 수상한 장 팀장은 “내가 만약 실직한다면 트럭 채소장사나 목욕탕 종업원 등을 해서라도 다시 일어설 것”이라며 “남의 이목을 두려워하지 않고 뭐든 열정을 갖고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한다”고 강조했다. 박영대  기자
지난해 12월 30일 오전 1시경 장순애 대한생명 남영지점 팀장(오른쪽)이 서울 중구 신당동의 패션몰 ‘유어스’의 한 상인에게 재무 설계 조언을 하고 있다. 대한생명 최초로 4회 보험여왕을 수상한 장 팀장은 “내가 만약 실직한다면 트럭 채소장사나 목욕탕 종업원 등을 해서라도 다시 일어설 것”이라며 “남의 이목을 두려워하지 않고 뭐든 열정을 갖고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한다”고 강조했다. 박영대 기자
새벽시장 찬바람이 날 보험왕으로 키웠죠

동대문·남대문 10년째 누빈 ‘보험누나’

“체면 버리고 열심히 살면 누구나 성공”

따르르릉∼. 오후 11시를 알리는 자명종이 울린다.

대한생명 서울 남영지점의 보험설계사인 장순애(51·사진) 팀장이 잠을 깨는 시간이다. 그는 하루 4시간씩만 자는 게 익숙해져서인지 피곤함을 느끼진 않는다. 기다리고 있는 ‘동생들’ 얼굴을 떠올리면 오히려 힘이 난다고 했다.

장 팀장은 보라색 투피스를 골라 입었다. 서울 용산구 이촌동 집을 출발한 시간은 오후 11시 35분. 정확히 밤 12시에 작업 무대인 동대문시장에 도착했다.

그는 밤 12시부터 다음 날 오후 6시까지 18시간 동안 일한다. 출퇴근 시간 2시간을 빼고 남은 4시간 동안 집에서 잠을 잔다. ‘새벽부터 열심히 뛰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외환위기 때 다니던 은행을 과감하게 떠나 대한생명에서 최초로 4회나 보험여왕에 오른 그의 하루를 뒤따라가 봤다.

○ 2008년 12월 30일 오전 1시

“영식아, 잘 지내지? 오늘 매상은 좀 어때?”(장 팀장)

“연말이니까 좀 낫네요. 근데 누나 오늘은 왜 빨간 옷 안 입었어요?”(동대문 패션몰 ‘유어스’ 3층 매장의 한 점원)

동대문 패션몰 내에서 장 팀장은 누나 혹은 언니로 통했다. 그는 영업 내내 보험상품 이야기를 일절 꺼내지 않았다. 대신 손아래 상인들의 불편한 점을 챙기며 정말 ‘누나’처럼 다가갔다. 동대문과 남대문시장에 있는 장 팀장의 고객은 530여 명. 모든 고객의 이름을 다 외웠다.

장 팀장은 일요일 빼고 하루도 빠짐없이 자정부터 동대문시장의 패션몰 4개를 순서대로 돈다. 만약 예정된 시간에 예정된 장소에 나타나지 않으면 누군가와 계약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최근 “반 토막 난 펀드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묻는 상인이 많았다고 한다. 전직 은행원 경력을 십분 발휘해 펀드 상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 줬다. 그러면 어느새 상인은 장 팀장의 고객이 돼 있었다. 그는 보험 대신 ‘신뢰’를 팔았다.

○ 1998년 2월 24일 오후 1시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상업은행(현 우리은행)은 명예퇴직 신청을 받았다. 주위 동료 수십 명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떠났다.

당시 상업은행 남대문지점에서 남대문시장 수금 담당 계장이었던 장 팀장은 스스로 사표를 던졌다. 이어 곧바로 대한생명에 입사했다. 주위에서 모두들 “미쳤다”고 말했다. 하긴 안정적인 화이트칼라 대신 불확실한 영업맨의 길을 스스로 택했으니. 남편과 하나밖에 없는 아들(28)의 적극적인 응원이 없었으면 이런 결정 자체가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보험설계사가 된 1998년은 외환위기로 한국 경제가 휘청거릴 때였다. 하지만 장 팀장은 ‘위기가 곧 기회’라는 신조를 갖고 있다. “장사가 안 된다”고 해도 어딘가 돈이 모이는 곳은 분명 있다.

장 팀장은 보험설계사가 된 직후부터 남대문의 새벽시장을 공략했다. 낮에는 장 팀장 말고도 수십 명의 보험설계사가 시장을 누비지만 새벽시장의 상인들과 함께하는 보험설계사는 장 팀장이 유일했다.

상인들은 장 씨의 성실성을 보고 하나 둘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자신의 종잣돈도 맡겼다. 은행원 시절 때부터 알던 고객 수십 명도 그가 권하는 상품으로 갈아탔다.

10년 전 외환위기 때보다 더 힘들다고 하는 2009년, 과연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당연히 찾을 수 있죠. 단, 열정적으로 그 일을 해야 하고 남의 이목을 무서워해선 안 된다는 조건 아래서입니다.”

그는 목욕탕에서 일하는 종업원을 예로 들었다. 장 씨는 새벽 근무 후 사우나에 가는데 거기서 때를 밀면 2만 원, 마사지를 하면 5만 원을 내야 한다. 종업원이 워낙 정성스럽게 때를 밀어 몇 번은 마사지도 받았단다.

장 팀장은 “단골로 가는 남대문시장 인근 사우나의 종업원은 월수입 1000만 원”이라며 “경제난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체면을 버리고 열심히 살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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