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의석 1.7% 정당의 입법 봉쇄는 反민주 테러다

  • 입력 2008년 12월 13일 02시 58분


민주노동당 의원 5명이 국회 법사위 회의장을 수시로 점거해, 여야 합의로 기획재정위를 통과한 감세법안이 법사위에 상정조차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민주당 소속 유선호 법사위원장이 “이견이 없는 법안부터 처리하겠다”며 설득했으나 민노당 의원들이 12일 다시 점거농성을 벌이는 바람에 16개 감세법안은 처리가 불투명해졌다. 민주당의 일부 법사위원은 “소수의 의견도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 아니냐”며 민노당 의원들의 행위에 동조했지만 다수결의 민주적 정당성과 소수의견 존중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소치다.

다수의 결정이 항상 옳거나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소수의견 존중도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다. 소수자에게도 회의에 참석해 다수를 설득하기 위해 발언할 기회를 제공하고 표결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폭력으로 회의 자체를 원천 봉쇄하는 것은 불법 횡포이자 소수의 독재다. 의원 5명이 폭력적인 방법으로 회의장을 점거하고 회의 진행을 방해하는 행위를 ‘소수의견 존중’이라고 인정해주는 민주주의 국가는 지구상에 없다.

미국 상원에서도 다수파의 독주를 막기 위해 소수파가 장시간 연설 같은 합법적 수단을 통해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행위(필리버스터)를 인정한다. 그러나 필리버스터는 합법의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폭력적인 의사진행 방해나 점거농성과는 다르다. 특히 미국 상원에서는 압도적 다수(supermajority·상원의원 정원의 5분의 3인 60명 이상)가 동의해 토론 종결을 결의하면 필리버스터도 중지된다.

한나라당(172명) 민주당(83명) 선진과창조모임(20명) 등 전체 의석의 92%를 차지하는 정당들이 처리하기로 합의한 법안이 전체 의석의 1.7%인 민노당 소속 의원 5명의 방해로 법사위에 상정조차 안 되는 사태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기초인 민주적 의사결정 절차의 파탄이나 다름없다.

유 위원장은 회의장 질서를 유지할 책무를 포기했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더욱이 여야가 합의한 종부세법 개정안은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취지에도 못 미칠 만큼 미약하고, 법인세법 등 개정안은 경기 활성화 대책을 담고 있다. 그런데도 민노당이 ‘부자들을 위한 감세법안’ 운운하며 처리를 방해하는 것은 선동정치이며 대의 민주정치에 대한 테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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