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다시 純채무국 되어 맞는 경제 국치일 11주년

  • 입력 2008년 12월 1일 02시 59분


한국이 8년간 순채권국 지위를 누리다가 순채무국으로 물러섰다. 9월 말 현재 채권보다 채무가 251억 달러 많다는 잠정치가 나왔다. 한국은행과 정부는 상환 부담이 적은 외채 1112억 달러를 제외하면 사실상 861억 달러의 순채권국이라며 “걱정 말라”고 국민을 안심시킨다. 최근 넉 달간 외국인이 280억 달러어치의 주식 등을 팔고 떠난 게 대외채권을 감소시켜 통계의 착시현상을 일으켰다고 덧붙이기도 한다.

그러나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유동외채(단기외채 및 남은 만기가 1년 이내인 장기외채)는 6개월 전보다 110억 달러 늘어 2271억 달러나 됐다. 이는 외환보유액의 94.8%이다. 1년 안에 소멸하는 외채를 제외하면 이 비율이 74.1%로 낮아진다지만 외채 갚고 남는 외환보유액이 위급 상황에 대비하기에 결코 넉넉하지 않다.

전체 외채 중 단기외채 비중은 44.6%로 작년 말 41.7%보다 높아졌다. 우리처럼 국제금융시장에 깊숙이 편입된 나라는 이를 가볍게 봐선 안 된다. 평상 시 외채의 만기연장이 쉽더라도 국제금융시장이 출렁이면 외환위기가 고조될 수 있고 선박대금 채권과 단기차입 간의 만기 불일치는 숫자로 된 외환보유액을 무력화할 수 있다. 11년 전 환란(換亂)도 그렇게 시작됐던 기억이 생생하다. 1997년 12월 3일 우리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대신 IMF가 요구한 경제정책을 펴기로 약속하는 양해각서 서명식을 가졌다. ‘경제 국치일(國恥日)’이라고도 불렸던 그날이다.

그 뒤 2000년 한국이 순채권국이 되자 국제 신용평가회사들은 한국 경제의 강점을 꼽을 때 이를 빠뜨리지 않았다. 그만큼 대접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올해 단기외채 급증은 은행들의 외화유동성 불안을 키웠고 원-달러 환율을 폭등(원화가치 폭락)시킨 한 원인이 됐다. 이제 순채무국까지 됐으니 투자설명회(IR)라도 열어서 국제투자가들에게 그 배경을 구구절절 설명해야 할 처지다. 자칫하면 신용등급이 하락하거나 외환 관련 루머에 휩싸일 수 있다.

하루속히 순채권국으로 복귀해야 한다. 경상수지가 수입과 해외여행 감소 덕에 10월 49억 달러 흑자에 이어 11월에도 10억 달러 흑자를 낸다 해도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정부는 올해 5월 “급증하는 단기외채에 대한 대책을 연구 중”이라고 했다. 방안을 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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