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승호]새만금에는 어떤 시대정신이?

  • 입력 2008년 10월 15일 02시 57분


에펠탑은 예술과 낭만의 도시 파리를 대표한다. 프랑스혁명 100주년 기념탑이며, 강철 빔이라는 신소재를 활용한 19세기 건축의 대표작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금문교는 미 서부인들의 도전과 창의, 열린 상상력을 상징하는 조형물이다.

하지만 이들과 비교도 안 되는 대역사(大役事)가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다. 새만금이다. 에펠탑은 25개월 만에, 금문교는 6년 만에 완공됐다. 새만금은 16년 만에 부안∼군산 33km 방조제 물막이 공사만 겨우 끝났다.

지난 주말 새만금에 다녀왔다. 2006년 물막이 공사 직후에도 갔다왔으니 두 번째다. 그곳에 가면 아득한 바다 한가운데로 뻗어나간 바닥 폭 300m의 방조제, 죽 늘어선 초대형 갑문 등 규모에 우선 압도당한다. 그리고 이런 사업을 해내는 우리의 저력에 은근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김완주 전북지사는 “새만금은 전북도민들에게 종교처럼 돼버렸다. 성공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충만하다”고 말했다. 김호수 부안군수는 “(원전 방폐장 사건으로) 부안군민의 상처는 아직 깊다. 새만금이 군민 화해의 계기가 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새만금은 전북도민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중앙정부의 사업이지만 국가 차원으로 국한해 볼 일도 아니다. ‘글로벌 시각’에서 조망돼야 한다.

새만금의 시작은 농지 간척 공사였다. 그래서 지금도 농림부가 주무부처다. 시간이 지나면서 좋은 공장용지를 공급한다는 쪽으로 무게가 옮겨갔다. 곧 새 정부의 새만금 내부개발계획이 새로 마련된다.

이 시점에 필자는 “제발 땅 만들기에 매달리지 말라”고 말한다. 한국이 국토가 풍족한 나라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있는 대로 바다를 메울 시대는 지났다. 이런저런 규제에 묶인 땅을 제대로 쓰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개발연대식 간척 구호로는 환경변화에 대한 문제 제기에조차 제대로 답변할 수 없다.

그 정도의 역사라면 세기사적 고뇌를, 문명사적 시선을 담아야 한다. 21세기를 맞은 인류의 소망과 미래와 꿈을 실현하는 그 무엇이 돼야 한다. 그런 깊이와 폭으로 철학이 정립되고, 전략이 짜이며 세부내용이 마련돼야 한다. 에펠탑과 금문교가 지금껏 세계인에게서 사랑받는 것은 당대의 시대정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세상에 하나뿐인 ‘명품’이 돼야 한다. 두바이나 상하이쯤을 경쟁자로 상정하되 ‘제2 두바이’ 같은 것이어서는 곤란하다.

전북도가 최근 연 새만금 국제포럼에서 많은 미래학자들은 ‘새만금의 공간 구성을 가능하면 친수(親水) 자연화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면 공간의 가치가 30∼40% 높아진다면서. 또 우리가 가진 것을 보존하는 데 힘쓰라고 권했다 한다. 옳은 말이다.

사실 서울 3분의 2 크기의 바다가 멀리 외해(外海)에 있으면 그저 그런 넓이의 바다일 뿐이다. 하지만 자연 문화 휴식 레저 교육 산업이 하나로 어우러진 수변공간이 되면 전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우리의 생활 속에 융해되면서 삶의 질을 가멸게 한다. 선유도 등 고군산 열도도 그곳에 있지 않은가.

가을이 농익고 있다. 어떠신가. 새만금 방조제에 한번 가보는 것이. 그래서 우리에 대한 자부심도 느껴보고, ‘국토의 재구성과 보존’ 같은 고급스러운 주제의 상념에도 한 번쯤 잠겨 보는 것이.

허승호 경제부장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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