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정훈]칼 대신 책을 든 군주

  • 입력 2008년 10월 7일 03시 00분


지난해 2월의 일이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외국인 연구자들과 국내 학계인사들이 서울 여의도에서 국제심포지엄을 열었다. 심포지엄 둘째 날 주최 측의 초청으로 한정식 코스요리로 배불리 저녁식사를 한 외국인 연구자 10여 명이 소화도 시킬 겸해서 자기들끼리 숙소 주변 여의도공원 산책에 나섰다.

어둑한 공원을 거닐던 중 모자를 쓴 채 무릎 위에 책을 펼쳐 놓고 앉아 있는 동상 하나가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1999년 서울시가 이곳에 세운 세종대왕 동상이었다. 한국은 다들 초행길인 데다 한국 역사에 관해 별다른 지식도 없던 이들이 알쏭달쏭한 표정만 짓고 있을 때 일행 중에 A 씨가 “한국은 불교로 유명한 나라니까 아마 불교와 관련된 동상일 것”이라는 추론을 내놨다. 그러나 동상 가까이에 ‘세종대왕(The Great King Sejong)’이라는 문패가 있었고, 이들은 “이 사람이 왕이라는데, 맞는 얘기일까”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상 옆 영문 안내문을 자세히 들여다본 이들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발명했다’는 설명에 더욱 놀라워했다. 역사와 인류학에 밝다는 호주 출신 B 씨가 “책을 펴들고 있는 왕을 기린 동상을 본 적이 없다. 이렇게 인문주의적인 왕은 처음 보았다”고 감탄했다. 그러나 대다수는 “영문 번역이 잘못됐을 것이다” “어떻게 왕이 글자를 만들었겠느냐” “아마도 불문(不文)문자를 단지 표기하는 방법을 고안했을 것이다”라며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음 날 오전 셋째 날 심포지엄이 시작됐지만, 전날 밤에 보았던 의문의 동상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지 않았는지 이들은 심포지엄은 제쳐놓고 ILO의 동료 한국인 연구자인 L 씨에게 다가가 “세종이란 왕이 어떤 사람이냐” “글자를 만든 게 사실이냐”라고 캐물었다. L 씨는 “왕이 직접 책을 보고 연구하면서 백성을 위해 글자를 만든 것을 기리기 위해 ‘공부하는 왕’의 동상을 세웠다”고 설명해 줬다고 한다.

‘왕의 동상’이라면 창이나 칼을 들고 말을 탄 화려한 기마상밖에 본 적이 없는 이들의 눈에 익선관과 곤룡포 차림에 책을 펴든 세종대왕의 모습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을 것이다. 왕 하면 군사를 이끌고 영토를 확장한 ‘정복군주’라는 인식이 깊게 심어져 있던 터라, 세종대왕은 일종의 문화충격이었던 셈이다. L 씨는 몇 달 전 그들의 세종대왕 동상 견문 일화를 들려주면서 “그때 나 자신도 세종대왕을 새롭게 보게 됐다”고 했다.

한글의 발명은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볼 때에도 우리 역사에 이정표 같은 사건이다. 많은 나라에서 헌법에 명문화돼 있는 표현의 자유는 18세기 서구 시민혁명 과정에 정립된 것이지만, 문자는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데 있어 가장 근본이 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제 뜻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이를 딱하게 여기어 새로 28자(字)를 만들었다”(조선왕조실록 국역본·국사편찬위원회)는 훈민정음 어제(御製)의 취지는 표현의 자유를 천부인권으로 본 근대 민주주의 이념과도 맞닿아 있다.

모레는 세종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날을 기념한 562돌 한글날이다. 세종이 ‘백성을 어여삐 여겨’ 한글을 만들 때에는 악플이 춤을 추는 참담한 세상은 꿈꾸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글이 오용을 넘어서서 살인무기화한 지금, 이번 한글날에는 그에게 헌사를 바치기 이전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김정훈 사회부 차장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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