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연봉 과학기술인]<2>업체 기술지원 최은경 박사

  • 입력 2008년 9월 26일 03시 00분


섬유 속에 남은 유해물질을 분석해 기업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는 최은경 박사는 “과학자란 직업은 자기의 이름을 걸고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는 전문직”이라고 강조했다. 사진 제공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섬유 속에 남은 유해물질을 분석해 기업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는 최은경 박사는 “과학자란 직업은 자기의 이름을 걸고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는 전문직”이라고 강조했다. 사진 제공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수출품 유해규제 대응… 기업 애로 해결사로

○ 1994년, 기업과 인연을 맺다(3000만 원대)

난 한국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유학 시절 실험실에서 큰 폭발사고를 당했다. 병원에도 실려 가고 지역신문에도 기사가 났다. 그 두려움으로 ‘섬유화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한국에 돌아와 1년을 대학에서 강사로 보냈다. 어느 날 남편이 ‘섬유 전공자’를 뽑는다며 원서를 가져왔다. 기업과 교류하고 기업을 돕는 정부 출연 연구소였다.

연구소에 들어와 보니 하루빨리 선배 연구원들과 일원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여성으로서 기업과 네트워크가 부족했다. 기업에 가면 남성 후배 직원을 책임자로 착각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적극적으로 변했다. 달력엔 기업 관계자와의 약속을 가득 적어 놓았다. 어렵게 생각했던 기업 방문도 조금씩 익숙해졌다. 그들을 만나면 오히려 삶의 격려를 받았다.

○ 1995년, 유럽에서 만난 운명(4000만 원대)

1995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세계무역기구(WTO)가 ‘섬유 제품의 에코라벨 및 환경규제 워크숍’을 개최했다. 관련 정책을 담당하는 여성 공무원의 기술자문 역을 맡아 참석했다.

유럽은 섬유 수출국에 환경 규제를 가하려고 했다. 섬유 제품에 유해물질이 남아 있으면 수출이 금지될 수 있었다. 받은 자료만 두 상자 분량이었다. 자료를 번역하고 보고서를 냈지만 마음속엔 숙제가 남았다. 자칫하면 우리 섬유 기업들의 수출길이 막힐 수 있었다. 내가 무얼 도울 수 있을까.

구매자 ‘요구’ 맞춰 기업 컨설팅-원인 분석

‘섬유제품 환경 규제’ 시험-인증 인프라 구축

유럽 전자제품도 수출 조건 까다로워져 일거리 급증

○ 2002년, ‘섬유환경분석실’을 만들다(5900만 원)

드디어 연구원에 ‘섬유제품 환경규제’에 대응할 수 있는 시험·인증 인프라를 구축했다.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계속해서 주위에 이 일의 중요성을 알렸다. 마침내 25억 원의 예산을 사용할 기회를 얻었다. 유해물질 분석 장비를 사고 사람을 모아 섬유환경분석실을 만들었다.

유럽의 구매자가 요구하는 환경인증을 받도록 기업을 컨설팅하고 섬유 제품을 분석하는 것이 우리 일이다. 유해물질이 발견되면 바로 원인을 찾아내야 했다. 수입은 적었지만 기업의 애로를 해결하는 게 즐거웠다. 아무리 오래 걸려도 제조 과정부터 시료까지 철저히 분석하며 해결책을 찾았다. 차츰 우리를 믿고 찾아오는 기업이 늘었다.

한번은 섬유기업 수출 담당자가 울상이 되어 찾아왔다. 수출한 섬유 원단에서 유해물질이 발견됐다며 구매처에서 바로 돌려보내겠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밤을 새워가며 분석한 끝에 원인을 찾아냈다. 중국에서 수입한 실크가 문제였다. 담당자는 다음 날 결과를 들고 새벽같이 유럽 현지로 떠났다.

○ 2006년, ‘유해물질분석센터’로 확장하다(현재 1억300만 원)

2006년 유럽에서 새로운 소식이 들렸다. 전기·전자 제품에도 유해물질 규제를 만든다는 것이다. 덩달아 우리 일도 확장됐다. 삼성전자, LG전자와 에코랩 협력관계를 맺었다. 실험실 이름도 유해물질분석센터로 바꿨다. 지금은 200여 개 기업과 크고 작은 애로사항을 나누고 있다. 5명의 팀원과 정말 좋은 팀워크로 즐겁게 일하고 있다.

일하면서 지금까지 연봉을 많이 받으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대학 시절 때 난 ‘대학’만이 내가 일할 곳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연구소에서 15년간 일하면서 내가 할 일은 무한했다. 기업을 도우면서 난 긍정적으로 변했고, 세상을 보는 시야도 넓어졌다. 앞으로 남은 10여 년, 난 더욱 즐겁게 일할 것이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dream@donga.com

▼주목! 이 기술▼

유럽연합(EU)이 주도하는 유해물질 환경규제는 1990년 중반 섬유제품에서 시작되어 2006년 전기전자제품, 2008년 전 산업으로 확장됐다. 국내 수출기업에는 큰 비관세 장벽이 되고 있다. 최은경 박사팀은 최신 환경규제를 모니터링하고 미량의 유해물질을 분석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전문 분석 인력을 양성하고 첨단 장비를 구축하며 유해물질의 근원을 찾아 이를 제거하고 대체할 수 있도록 기술 지원을 한다. 무엇보다 애로사항이 있는 중소기업이 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모든 시스템의 문을 열어 놓고 있다.

○ 최은경 박사는

1960년 3월 경북 영천 출생

1982년 2월 서울대 화학교육과 졸업(학사, 석사)

1987년 5월 미국 코넬대 화학과(석사)

1991년 5월 미국 코넬대 섬유학과(박사)

1994년 5월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입사(선임연구원)

2001년 1월∼현재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섬유소재본부(수석연구원)

2002년 1월∼현재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유해물질분석센터(운영책임자)

2005년 5월∼2006년 12월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섬유소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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