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글로벌 ‘금융 허리케인’에 정부-市場 총력 대응을

  • 입력 2008년 9월 17일 03시 02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촉발된 월가(街)발 ‘대형 허리케인’의 폭발력은 세계시장을 뒤흔들 만큼 엄청났다. 미국 4위 투자은행(IB)인 리먼브러더스가 파산을 신청하고, 최대 증권사인 메릴린치가 부실을 감당하지 못해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매각되자 세계 금융시장이 공황(패닉)상태에 빠졌다. 주가 폭락의 허리케인은 유럽과 미국을 거쳐 어제 아시아 증시를 맹타했다.

한국도 코스피지수가 90.17포인트 떨어지면서 ‘검은 화요일’의 악몽에 휩싸였다. 원-달러 환율은 10년 만에 최대인 50.90원 치솟으며 금융시장의 혼란을 키웠다. 지난 몇 개월간 우리를 짓눌렀던 ‘9월 위기설’에서 겨우 벗어날 만하니까 훨씬 큰 메가톤급 태풍이 한국 시장과 경제를 덮친 것이다.

월街보다 더 동요하는 한국 금융시장

작년 상반기부터 국제 금융시장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서브프라임의 악령은 낙관론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꽤 오랜 기간 시장 교란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졌다. ‘단기 고수익’의 꿈을 실현해 금융의 총아로 각광 받던 미국형 IB 모델은 외부 충격에 취약한 한계를 속절없이 드러냈다. 주택 시황이 안정될 때까지는 금융권의 전체 손실이 얼마나 되고, 금융회사가 얼마나 더 넘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미국 금융시장의 불안은 위험 바이러스를 다른 나라 금융에 전파하는 것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서브프라임 부실 사태가 미국 실물경제를 위축시키고 전 세계적 불황의 단초를 제공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금융회사들이 이번 사태로 입은 직접 손실은 자산 규모에 비추어 그리 크지 않다. 리먼브러더스에 투자했다가 7억2000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지만 국내 금융사의 자산 건전성을 감안하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한국의 금융지표는 패닉의 원인을 제공한 미국이나 주요 선진국보다 훨씬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장 참가자들이 외부 악재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대응해 피해를 실제 이상으로 키우는 측면이 있다.

미국 정부는 ‘개별 회사에 대한 구제금융은 국민 세금으로 모럴 해저드를 조장한다’는 원칙에 따라 리먼브러더스의 간곡한 호소에도 끝내 자금 지원을 거부했다. 역으로 생각하면 미국의 금융체제가 리먼브러더스와 메릴린치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을 만큼 체력을 갖추고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주요국 정부들도 위기 확산을 막기 위해 정책 수단을 총동원하고 국제 공조체제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중국은 기준금리와 지급준비율을 전격 인하했고 일본은 어제 총 1조5000억 엔의 자금을 단기금융시장에 공급했다.

정부 당국자들은 단기적으로는 투자심리가 위축될 수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시장 불확실성이 축소돼 신용경색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글로벌 금융의 충격에서 어떤 나라도 안전하지는 않지만 과도한 쏠림 현상은 피해를 키울 뿐이다. 다만 긴장의 이완은 더 큰 재앙을 가져올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외환보유액은 줄어드는데 우리나라가 외국에 꾸어준 돈(대외채권)에서 외국에 갚아야 할 돈(대외채무)을 뺀 순대외채권은 6월 말 기준 27억 달러로 순채무국 전락이 눈앞에 와 있는 현실은 불안한 대목이다.

산업은행이 리먼브러더스 인수를 추진했다가 정부 내부에서 신중론이 제기돼 계약을 포기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만 인수 포기 결정이 충분한 정보와 치밀한 분석을 통해 이뤄진 것인지는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대통령경제수석실 등 당국자들은 이번 사태의 원인과 파장 등을 논의하면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번 사태는 규제를 바꾸는 정도가 아니라 새롭게 재편될 국제 금융질서의 틀에 능동적으로 적응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국제 금융시장의 돌발 요인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해 외화 유동성을 차질 없이 공급하는 한편 관련 부처 간의 유기적인 협조 및 대응체제를 가동해 시장의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전광우 금융위원장, 박병원 대통령경제수석은 이번 금융위기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있는가. 위기 상황을 맞았더라도 정책 결정자들이 적시에 올바른 결정을 내려 기민하게 대처하면 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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