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物價 잡기와 景氣 살리기, 擇一할 순 없다

  • 입력 2008년 8월 8일 02시 54분


한국은행이 어제 기준금리를 연 5.00%에서 5.2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2000년 통화정책 대상이 통화량에서 금리로 바뀐 이후 최고 수준이다. 시중은행들은 이에 맞춰 예금금리를 0.2∼0.5%포인트 인상한 데 이어 대출금리도 올릴 예정이다.

우리뿐 아니라 세계 각국이 인플레와 경기 침체 사이에서 정책 선택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인플레 우려 때문에 지난달 금리를 올린 반면 미국과 영국은 5개월째, 일본은 18개월째 동결한 상태다. 한은의 금리인상은 물가 오름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번지는 상황에서 고(高)물가의 고삐를 먼저 잡아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결정이다. 최근 국제유가가 5월 수준으로 하락했지만 최악의 시나리오만 피했을 뿐 장기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하지만 금리인상은 중소기업과 가계의 부담을 키운다. 가계부채는 현재 640조 원으로 금리가 0.5%포인트만 올라도 추가 부담이 연 3조 원을 넘는다. 기획재정부는 “가계와 중소기업의 연체율 추이를 봐 가며 필요할 경우 단계별 금융대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서민과 중소기업의 금리인상 부담이 최소화하도록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금리인상은 생산 소비 고용을 함께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한은은 내수 부진 속에서 수출이 버팀목 역할을 해 경기가 급속히 악화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6개월 후의 경기와 소비지출에 대한 소비자기대지수는 5, 6, 7월 석 달 연속 하락해 7년 7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질 가능성을 예고했다. 이 지수가 100 이하면 경기가 나빠질 것으로 보는 가구가 많다는 뜻인데 7월엔 84.6으로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한은 간에 정책방향에 대한 다소간의 시각차가 감지되고 있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금리인상의 경기억제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반면 정부 당국자는 “경기가 하강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는 데 대한 우려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해 현 시점의 금리인상이 탐탁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경제가 불안정한 상황에선 정책당국 간의 인식차를 사전에 조율하고 마찰을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가와 경기 중에서 택일(擇一)할 수는 없다. 정부가 정책통합 능력을 보여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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