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용희]기름값 비싸다면 걷자

  • 입력 2008년 7월 21일 02시 52분


“쌀 한 가마니 얼맙니까?” 하고 묻던 시절이 있었다. 쌀 한 가마니 값으로 서울 유학 간 자식 등록금을 계산하고 쌀 한 가마니 값으로 집안 살림살이 형편이 결정되던 시절 말이다. 이젠 달라졌다. “요즘 기름값이 얼마 갑니까?” 기름값이 배럴당 몇 달러이고 L당 얼마가 되었나가 물가의 바로미터가 됐다.

비만-냉방병, 풍요가 빚은 불청객

불과 100년 만에 인류는 농경사회에서 문명사회로의 완벽한 전환을 맞았다. 모든 것이 편리해졌다. 달라졌다. 몸져누운 엄마를 위해 산딸기를 구하러 겨울 산을 헤매는 동화 속 효자 이야기는 더는 감동을 줄 수 없다. 과일과 채소는 일년 내내 슈퍼마켓에서 살 수 있다. 제철 과일이라니. 모든 과일은 하우스에서 인공적으로 재배되고 카바이드등 불빛으로 익어간다. 양계장의 닭은 한밤중에도 전기 불빛 아래서 알을 낳는다.

현대인을 위해 준비된 메뉴는 이 밖에도 많다. 카페인 없는 커피, 다이어트 콜라, 무통분만, 무정란…. 그뿐인가. 애견의 생식기를 거세하고 채식 동물에게 육식 사료를 먹여 살을 찌운다.

현대인은 효율과 속도와 편리를 중시한다. 경제적이며 합리적이다. 감정마저도 경제적이고 합리적으로 관리한다. 쿨한 연인은 사귀면서도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돼 있다. 고통은 삭제되고 모든 것은 풍요롭다.

그러나 고유가시대를 맞고 나니 우리가 지금껏 누리던 ‘풍요하고 합리적인 편리’가 ‘비합리적 과잉’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가용을 타고 다니면서 비만증과 성인병이 생긴다. 비만증은 다시 트레드밀에서 죽도록 달리게 한다. 한여름에도 긴팔 와이셔츠를 입어 에어컨을 세게 틀게 되고, 하루 종일 에어컨을 틀어 냉방병에 걸린다.

과잉과 잉여로 다이어트 시장 매출은 매년 늘어난다. 먹는 데 들어가는 돈보다 살 빼는 데 들어가는 돈이 더 든다. 자본은 점점 더 많은 잉여를 낳고 점점 더 많은 소비를 강요한다. 소비는 소비를 낳고 소비를 재생산할 뿐이다.

최근 세계는 고유가 파동을 겪고 있다. 기름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더더욱 에너지 문제가 초비상이다. 기름값이 배럴당 150달러를 상회할 수 있다는 예측이 미래에 대한 우울한 전망이다. 에너지를 절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곳곳마다 높다.

미국에서는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주4일 근무제를 시도한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여름철에 넥타이를 매지 않고 실내 온도를 28도로 유지하는 ‘쿨 비즈’ 정책을 2005년부터 시행 중이다. 한국보다 에너지 자립도와 소득 수준이 높은 선진국이 강력한 에너지 정책을 내놓고 있다.

한국 정부도 에너지 대책을 연일 내놓았다. 관공서와 회사에서도 ‘넥타이 부대’ 대신 ‘티셔츠 부대’가 등장했다. 한국 모든 지역에 전기가 들어오고 가정마다 냉온수가 나온 것이 불과 몇십 년 전이다. 대형차로 신분과 계급을 드러내는 과시욕, 소비 파워와 포스를 과시하는 자본주의의 오만함을 반성할 때가 됐다.

땀 흘리고 아끼는 것이 인간답다

이제는 라이프스타일을 바꿔야 한다. 적절한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 현대사회에서 오히려 ‘인간적 효율’이다. 자전거 타고 출근하기, 넥타이를 풀고 반팔 셔츠 입기, 땀 흘리며 지하철역까지 걸어가기. 하이힐을 신는 숙녀는 가방에 꼭 스니커즈 챙기기. 걷고 땀 흘리며 몸 감각을 회복하기.

고유가 시대, 우리는 잊었던 인간적 보행을 회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 거리 풍경과 다양한 군상을 쳐다볼 수 있는 인간관계의 여유를 갖게 되면 좋겠다. 아껴서 산다는 것은 삶에 대한 가장 인간적인 ‘겸허’의 자세다. 생명 있는 것에 대한 ‘존중’이다.

김용희 평택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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