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형준]17대 국회, 불명예 씻고 끝내라

  • 입력 2008년 5월 26일 03시 00분


17대 국회가 곧 역사의 장으로 사라진다. 2002년 4월 15일에 실시된 제17대 총선은 탄핵으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헌정 초유의 상태에서 치러졌다. 결과는 의정 56년 만에 처음으로 민주화 진보세력이 과반을 차지하게 됐다. 의원 충원에서 이 같은 획기적인 변화로 17대 국회가 역대 국회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 줄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다.

시작 화려했지만 끝은 초라해

하지만 17대 국회는 시작은 화려했지만 끝은 초라한 ‘시화종빈(始華終貧)’의 국회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일하는 국회, 상생 국회’를 표방하고 화려하게 출범했지만 제대로 된 민생법안을 생산하지 못하고 파행으로 얼룩졌기 때문이다. 특히 17대 국회 출범 초반부터 신문법, 과거사법, 국가보안법, 사학법 등 4대 개혁입법을 둘러싸고 진보-보수 간의 첨예한 대립으로 민생은 실종됐다. 한마디로 진보 세력은 국회 과반수를 차지했지만 무능과 독선으로 의정을 전혀 주도하지 못했다.

물론 17대 국회도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만한 일을 했다. 과거 국회에 비해 의원들의 입법활동이 양적으로 크게 늘어난 점이다. 5월 24일 기준으로 17대 국회 총법안발의는 7489건이었고, 그중 의원발의는 6387건(85.3%)으로 정부제출 법안(1102건)을 압도했다. 의원발의 건수는 15대 국회(1144건)의 5.6배, 16대 국회(1912건)의 3.3배에 이르렀다.

하지만 17대 국회의 의원법안 가결률은 21.2%로 15대 국회(40.2%)와 16대 국회(26.8%)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다. 반면 정부제출 법안 가결률은 51.1%로 상당히 높았다. 정부제출 법률안은 둘 중 하나가 정식 법률로 공포된 반면, 의원들이 낸 법률안은 5건에 4건꼴로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것은 의원들의 입법 능력이 부족하거나 의원들의 생색내기 실적 경쟁이 과열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태는 법안발의만 신경 쓰고 통과시키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는 무책임의 극치를 보인 것이다. 무책임과 파행으로 점철된 17대 국회에 대한 일반 국민의 평가는 가혹했다. 작년 11월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의 62.0%가 ‘국회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더구나 5.3%만이 ‘국회가 국민을 대표하고 있다’고 답했고, ‘국회가 발목을 잡아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기 어렵다’는 문항에 66.0%가 동의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17대 국회는 탄핵을 주도한 16대 국회보다도 일을 ‘잘 못했다’는 응답자가 66.4%였다. ‘잘했다’는 8.7%였다. 한마디로 17대 국회는 국민들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받았다. 그럼에도 17대 국회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마지막 과제가 있다. 국운이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하는 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한미 FTA는 정치 군사 경제 모든 면에서 한미관계를 한 단계 끌어올릴 소중한 기회라고 역설한 적이 있다.

FTA 처리해 ‘큰 정치’로 마무리를

임시국회를 재소집하면 29일까지 처리가 가능하다. 의회란 선거를 통해 선출된 동등한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회에 구속력 있는 법을 제정하는 회의체이고, 의원 개개인은 국민을 대변하는 독립된 헌법기관이다. 야당 지도부도 쇠고기 문제와 연계해 정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무조건 임시국회 재소집을 막아서는 안 된다.

한미 FTA는 국가적 중요 과제인 만큼 가결되든 부결되든 의원들이 소신과 국익 우선의 원칙에 따라 회기 마지막까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할 수 있다’고 국회법 제114조 2항에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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